한마디로 계산 착오다. 계산 착오는 상황과 국면을 제대로 읽지 못하는 오독(誤讀)이 원인이다. 바둑은 집이 모자라면 진다. 그래서 기사들은 포석 단계부터 끝내기에 이르기까지 끊임없이 계가(計家)를 한다.
원래 120석에 불과한 민주당은 여소야대 국면에서 야당의 협조 없이는 개혁조치나 각종 법의 제·개정을 할 수 없게 돼 있다. 그런데도 표결에 부친 것은 국민의당 40석 중 절반 정도가 임명에 찬성할 걸로 보았던 탓이다. 여기에 근본적 착오가 있었다. 정권 출범 직후에는 한국당과 달리 국민의당, 바른정당이 민주당과 느슨하게나마 연대하는 모습도 보였지만 안철수 전 대선 후보가 국민의당 대표가 되면서 분위기가 일변한 것에 무신경했다.
부결 직후 정부와 여당은 “무책임의 극치, 반대를 위한 반대, 상상도 못했다”거나 “적폐 연대의 시작”이라거나 “탄핵 불복이며 정권교체를 인정하지 않는 폭거”라고 비난했다. 이번 일이 촛불로 촉발된 거대한 변화·개혁의 흐름에 제동을 걸려는 세력이 정치적으로 재결집하기 시작한 것이라고 해석할 수도 있다. 실제로 그런 성격이 강하다.
지금까지 장관을 비롯한 고위 공직 임용 후보자 중 다섯 명이 사퇴하는 인사 사고가 발생했다. 김이수 헌재소장 후보의 낙마는 그런 인사 참사의 정점(頂點)이다. 김명수 대법원장 후보자의 임명 여부에도 큰 영향을 미치게 됐다. 그런 형편이니 ‘반동’의 움직임에 대한 비난은 화풀이용일 뿐 상황을 개선하는 데 도움이 되지 않는다.
변화와 개혁을 원활하게 추진하려면 지금부터라도 현실을 인정하고 협치(協治)의 길을 지향할 수밖에 없다. 이번 부결이 문 대통령의 독주에 제동을 건 것이라는 해석에 귀를 기울여야 한다. 개혁의 당위와 진정을 인정하지 않고 발목만 잡는 세력이라고 비난하거나 배척해서는 이루어질 수 있는 일이 없다.
일부러 그렇게 만들 수는 없지만 대통령의 지지율은 더 떨어져야 한다. 인기와 열광의 허상으로부터 좀 자유로워지고 차분해져야 현실을 제대로 볼 수 있다. 국민과의 소통을 지향하는 행사 기획은 이제 되도록 자제해야 한다. 청와대 사람들의 파안대소(破顔大笑)와, 흥겨운 동아리 모임 같은 분위기도 국정 운영의 진정성을 오히려 해치거나 ‘그들만의 잔치’, ‘또래집단의 모임’이라는 인상을 심어줄 수 있다. 배제와 외면의 정치로는 성공할 수 없다.
그리고 여당 지도부, 특히 추미애 대표가 달라져야 한다. 선명한 것만이 능사가 아닌데 지나치게 공격적이고 폭력적이다. 상황을 읽는 능력, 그에 맞춰 시의적절한 메시지를 생산하고 발신하는 능력이 떨어진다. 정치는 말이 전부라고 해도 과언이 아닌데 잦은 실기(失機)와 실언으로 인해 청와대와 여당의 관계도 그리 편안하거나 원만해 보이지 않는다. 정치인이든 누구든 다른 사람들의 이해와 공감을 얻으려면 일정한 매력이 있어야 한다.
지금 문재인 정부에서 단연 눈에 띄는 사람은 이낙연 국무총리다. 이 총리는 국정 운영의 각 국면에서 짚을 것을 잘 짚고 있다. 이 총리는 국회 대정부 질문에서 인사 낙마자 중 상당수에 대해 청와대에 의견을 전달했다고 밝힌 바 있다. 조금만 떨어져서 보면 문제점이 보인다. 이 총리는 “문재인 정부에서 가장 아쉬운 점 중 하나가 협치라고 생각한다”는 말도 했다. 이 총리의 의견을 경청하고 총리의 역할에 더 힘을 실어줘야 한다. 계산착오의 정치를 바꿔야 할 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