잘나가는 관광서비스업 K사 대표의 말이다. K사처럼 틈새시장에서 활약하는 고부가가치 알짜 기업이 대출받기 쉽지 않다고? 첫 귀에 이해가 가지 않았다. 대표 M 씨가 말을 이었다. “요즘엔 스타트업 한다고 하면 벤처캐피털들이 5억, 10억 원씩은 투자해 주잖아요.”
M 씨뿐만 아니라 최근 기업인들을 만나면 새 정부와 중소벤처기업부의 정책이 지나치게 ‘창업’에 방점을 두고 있는 게 아니냐는 목소리를 심심찮게 들을 수 있다. 기업인 A 씨는 “스타트업도 좋지만, 국가 경제에 실제로 도움이 되는 기업은 기술과 하드웨어에 기반을 갖고 있는 제조업”이라고 지적했다. 기업인 C 씨는 “질 좋은 일자리를 대규모로 창출할 수 있는 것은 스타트업이 아니라 스케일업(Scale-up) 단계의 혁신 기업”이라고 토로했다.
대통령이 창업 국가를 일궈 보겠다고 하자 각 부처와 산하단체들, 이익단체들은 저마다 창업기업 지원책을 발표하고 사업예산을 배분해 내놓고 있다. 정부는 투자 시장을 확충한다며 하반기 추경을 통해 모태펀드에 8600억 원을 출자, 연내 1조4000여억 원의 벤처펀드를 추가 조성하겠다고 했다. 가장 큰 폭으로 늘어난 것은 청년창업펀드로, 약 5500억 원 규모가 조성될 예정이다. 한 벤처캐피털(VC)업계 심사역은 “이제 스타트업 대표가 투자를 받기 위해 VC를 찾아다니는 게 아니라, 우리들이 돈을 싸들고 젊은 대표들을 찾아다닌다”고 귀띔했다.
정책금융과 함께 투자시장도 확대되고 있지만, M 씨처럼 수혜를 받기는커녕 대출조차 어려운 혁신 기업들이 여전히 생겨나는 점은 아이러니하다. 혁신창업 생태계는 7년 미만의 초기 창업기업들에 시장의 원칙을 뛰어넘는 특혜를 주는 정부발 벤처붐만으로는 완성될 수 없다. 미래가치가 있는 기업이라면 누구나 함께 누릴 수 있는 원칙과 인프라를 세우고, 정책의 사각지대를 메워 나가려는 노력이 보완돼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