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나라는 원칙적으로 낙태를 인정하지 않고 있다. 형법 제27장은 아이를 가진 여성이 약물, 기타 방법으로 낙태한 때에 1년 이하의 징역 또는 200만 원 이하의 벌금에 처하도록 규정하고 있다. 의사·한의사·조산사 등 의료인이 낙태에 관여한 때에는 이보다 무거운 2년 이하의 징역까지 처벌이 가능하도록 했다.
다만 보건복지부 소관 모자보건법에서 매우 제한적으로 낙태를 인정하고 있다. 유전적 정신장애, 신체질환, 전염성 질환, 강간, 친족성폭력, 산모 건강 우려 등의 경우에 한해 낙태를 인정하고 있다.
낙태죄처벌에 관한 형법 및 모자보건법은 1973년에 제정됐다. 무려 44년 동안 어떠한 사회적인 합의도 거치지 않은 채 유지돼 왔다. 처벌 대상에서 남성은 제외된다. 원치 않는 임신을 한 여성과 산부인과 의사에게만 책임을 지우는 것이다. 아이는 함께 만들었는데, 책임은 여성만 져야 한다. 그런데 합법적인 임신중절의 경우에는 배우자의 동의가 없이는 불법이다.
이렇다 보니 낙태죄를 현실에 맞게 손질해야 할 필요성이 대두되고 있다. 낙태죄는 ‘생명존중’과 ‘여성의 자기결정권’으로 팽팽하게 맞서고 있다. 하지만 ‘어느 쪽이 더 중요한가’ 하는 가치 논쟁으로는 사회적인 합의를 찾기 힘들어 보인다.
정부는 2005년과 2010년 조사를 벌여 낙태 건수를 각각 34만2000건, 16만8000건으로 집계했다. 의료계에서는 대부분 불법으로 규정돼 있는 현실을 고려하면 하루 평균 3000건, 연평균 낙태 건수를 70만~80만 건으로 추정하고 있다.
정부와 의료계 간에 낙태 수술과 관련된 기초자료조차 데이터가 엇갈리는 등 실질적인 제도 개선까지는 상당한 시일이 걸릴 것으로 보인다. 현실적인 법률 개정안이 나오기 전까지 정부는 피임 교육 강화와 비혼모(非婚母)에 대한 지원책 강구 등에 나서야 한다.
찬반 양쪽이 모두 강조한 점은 실정에 맞는 성교육과 피임에 대한 인식 강화다. 학교에서 이뤄지는 실질적인 성교육은 초등학교, 중학교, 고등학교 평균 5시간으로 법적으로 정해진 시간은 고작 15시간이다. 성교육은 학문적 지식, 피임 방법뿐만 아니라 사랑과 인권, 소통과 책임감 학습도 중요하다.
낙태 예방은 여성만이 아닌 남성도 함께 교육받고 책임져야 할 문제이다. 예방 교육이 제대로 이뤄지지 않는다면 낙태죄 폐지 여부와 상관없이 원치 않는 임신으로 고통받는 여성은 줄어들지 않을 것이다. 비혼모의 아이들을 제대로 양육할 수 있는 시스템 마련도 시급하다. 양육에 대한 경제적 비용, 양육 환경에 대한 책임 등 다양한 관점에서 논의돼야 한다. 우리나라에서는 복지 혜택은 물론 한부모 가정에 대한 사회적인 편견도 해소하지 못하고 있다.
낙태나 임신중절이 적발되거나 처벌되는 경우는 드물었다. 정부가 실정법상으로는 유죄이지만 단속과 처벌을 하지 않아 사실상 낙태 행위를 묵인하는 태도를 보여 온 것이다. 이제 정부가 여성의 행복과 건강, 임신, 출산이 함께 지지받을 수 있는 사회적인 여건을 조성해야 하는 시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