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엘리베이터 한번 맘 편히 못타는… 靑辯, 우리도 乙입니다”

입력 2018-01-04 10: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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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근로기준법 사각지대’ 놓인 청년 변호사들

청년 변호사들이 근로기준법 ‘사각지대’에 놓여있다. 퇴근 없는 삶에도 불구하고 연장·야근 근로 등 각종 수당을 받지 못한다. 여전히 근로계약서를 작성하지 않고 구두로 임금을 합의하는 곳도 상당수다. 근로자 권리 향상을 위해 노력해야 할 법조계가 정작 소속 변호사들의 권리를 무시한다는 비판이 나온다.

◇근로계약서 유명무실...장시간 노동에도 수당 없어

중견 로펌에서 일하다가 최근 독립한 한 변호사는 밀린 성과급과 퇴직금 때문에 애를 먹었다. 로펌 측에서 애초 약속했던 돈을 주지 않으려 버텼기 때문이다. 보통 어쏘(associate attorney, 로펌이나 변호사에 고용된 저연차 변호사)들은 매일같이 장시간 노동에 시달리면서도 수당을 제대로 받지 못한다. 대신 사건 처리 결과에 따라 성공보수의 20∼30% 수준의 일종의 성과급을 받기도 한다. 이 변호사는 “입사할 때 근로계약서를 작성하긴 했는데 당시 근로자 몫으로 한 부를 받지 못했다”며 “나중에 근로계약서를 요청했고 퇴직금도 받아냈다”고 했다. 하지만 구두로 약속했던 성과급은 포기할 수밖에 없었다.

대한변호사협회 청년변호사특별위원회가 2013년 12월 사법연수원 33기 이하 변호사 총 7743명을 상대로 실시한 설문조사 결과를 보면, 전체 응답자(549명) 가운데 근로계약서를 작성하지 않았다는 응답자가 77%(421%)에 이르렀다. 특히 개인 법률사무소나 중소형 로펌들은 근로계약서 없이 구두로 합의하는 경우가 많은 것이 현실이다.

대형로펌의 상황은 그나마 나은 편이다. 김앤장과 태평양, 광장, 화우, 지평, 로고스 등 대형 로펌 대부분은 모두 입사 시 근로계약서를 작성하고 있다. 다만 이 역시 형식적인 절차에 그친다는 지적도 나온다.

한 대형로펌의 6년 차 변호사는 “입사할 때 근로계약서를 작성한 것 같다”면서도 “임금과 근로시간 등에 대한 구체적인 합의는 없었다”고 했다. 근로기준법에 따르면 근로계약서에는 임금과 소정근로시간, 연차·유급 휴가 등을 명시해야 한다. 또 다른 대형로펌에서 일하는 변호사도 “형식적인 계약서로 근로계약서라고 말하기도 민망하다”고 전했다.

다만 높은 업무 강도에 관해서는 로펌 규모와 상관없이 대다수 변호사가 자유롭지 않다. 대한변협 설문조사를 보면 주당 법정근로시간(40시간)을 넘겨 일한다는 응답자가 전체의 92%(508명)에 달했다. 한 주에 68시간 넘게 일한다는 응답자도 14%(78명)였다. 최근 한 스타트업에 사내변호사로 들어간 변호사는 “로펌에 있을 때는 평일에 매일 오전 9시께부터 밤 11시까지 일했다”며 “사건을 처리하려면 어쩔 수 없었다”고 했다.

문제는 연장·야근 근로 등 시간외근로에 대한 수당을 받지 못하는 경우가 대부분이라는 것이다. 이 변호사는 “당시 9시부터 6시까지 근로시간이 적혀있긴 했으나 지켜진 적은 없다”며 “각종 수당을 모두 포함한 포괄임금제로 계약해 수당이 따로 없었다”고 말했다. 포괄임금제란 각종 수당을 급여에 포함해 일괄 지급하는 임금 방식이다. 근로시간을 산정하기 어렵다는 이유로 변호사 업계에서 일반적으로 사용한다.

◇여전한 ‘기수·서열 문화’...‘갑질'’에 스트레스

저연차 변호사들은 사법연수원 기수를 내세운 로펌 내 ‘갑질 문화’에 시달리기도 한다. 대형로펌에 다니는 한 로스쿨 출신 변호사는 회사에 입사하자마자 엄격한 기수 문화에 당황했다. 엘리베이터 안에서 서는 위치는 물론 타고 내리는 순서까지 하나하나 교육을 받아야 했기 때문이다. 이 변호사는 “엘리베이터 안에서 기수에 따라 서 있는 위치가 그려진 문서를 보며 교육을 받았다”며 “그나마 아직 막내급이라 ‘말석’인 엘리베이터 버튼 앞에 서기 때문에 이해하기 쉽다”고 했다. 나이 많은 외국 변호사가 타면 우스꽝스러운 상황도 벌어진다. 외국 변호사는 ‘레이디 퍼스트’를 외치지만 기존 원칙인 기수도 생각해야 하는 탓이다. 이 변호사는 “귀찮은 상황을 피하려 고층 사무실을 계단으로 다닌다”고 했다.

또 다른 대형로펌에서는 ‘요즘 젊은 사람은 음식을 들고 다니며 먹는다’는 파트너 변호사 말 한마디에 소동이 벌어졌다. 어쏘 변호사들이 테이크아웃 커피를 마실 때면 눈치를 보느라 계단을 이용한다는 것이다. 한 대형로펌의 파트너 변호사는 “판사와 검사 등 법조인은 모두 ‘기수’에서 자유로울 수 없다”며 “로스쿨 출신 변호사들도 들어오고 있고, 변호사 업계는 그나마 법원과 검찰보단 낫다”고 말했다. 또 다른 대형로펌의 파트너 변호사도 “전관 출신이 많은 로펌이면 기수를 더 엄격히 따질 수밖에 없다”고 했다.

하지만 이러한 상황에도 ‘을’의 지위에 있는 어쏘 변호사들은 문제를 제기하기 쉽지 않다. 로펌 내에서도 인사 적체로 파트너 변호사가 되기 위한 어쏘 변호사들의 경쟁이 심해졌기 때문이다. 파트너 변호사 눈 밖에 나면 인사평가는 물론 당장 맡을 사건조차 없을 수도 있다. 홀로 개업하기 전 5∼6년만 경력을 쌓으면 된다는 생각으로 버티기도 한다.

◇‘근로자’ 인식 시급...대한변협 등 변호사 단체도 나서야

대법원이 2012년 어쏘 변호사를 ‘근로자’로 인정했음에도 이처럼 열악한 노동환 이유는 무엇일까. 한 대형로펌의 파트너 변호사는 “변호사는 의뢰인과 사실상 ‘도급계약(일 완성을 약정으로 보수를 지급하는 방식)’을 체결해 제때 맡은 일을 끝내야 한다”며 “업무처리 시간은 개인에 따라 다른데 시간당 수당 등을 지급하면 인건비를 감당할 수 없다”고 설명했다.

법조계에서는 변호사 수 증가와 시장 악화 등으로 현실이 바뀌었음에도 기성 법조인들의 인식이 그대로인 점을 문제로 지적한다. 서울지방변호사회 회장을 지낸 나승철(40·사법연수원 35기) 변호사는 “예전에는 근로계약서를 안 쓰고 노동시간이 길어도 연봉이 워낙 높아서 아무도 이의 제기를 안 했다”며 “지금은 현실이 변했는데도 예전 관행이 그대로 남아 있어서 문제가 되는 것”이라고 말했다.

변호사는 근로기준법상 근로시간 제한 규정 적용을 받지 않는다는 업계의 일반적 시각을 비판하는 목소리도 높다. 나 변호사는 “포괄임금제는 근로시간을 산정할 수 없는 직업에 적용된다”며 “최근에는 ‘타임차지(Time Charge·일한 시간을 계산해 보수를 받는 방식)’를 많이 이용하는데 이는 근로시간을 재고 있다는 뜻”이라고 지적했다. 김현(61·17기) 대한변협 회장은 “대형로펌의 경우 높은 임금을 받기 때문에 소속 변호사들이 포괄임금제에 만족해한다”면서도 “중소형 로펌에서 낮은 임금에도 불구하고 변호사들에게 수당을 주지 않는 것은 개선해야 한다”고 했다.

대한변협 등 변호사 단체에서 나서야 한다는 지적도 나온다. 근로기준법을 위반한 로펌에 대한 적극적인 징계에 나서 경각심을 일깨워야 한다는 것이다. 김 회장은 “좁은 업계 탓에 진정이 많이 들어오지는 않는다”면서도 “조만간 청년 변호사들의 근무환경 실태 조사에 나설 것”이라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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