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드워드 카는 역사를 “현재와 과거의 끊임없는 대화”라는 유명한 말로 정의했다. 그런데 오늘 우리에겐 과거보다는 미래와 더 끊임없이 대화할 필요가 커졌다. “미래는 이미 우리 곁에 와 있다. 널리 퍼져 있지 않을 뿐이다”라는 윌리엄 깁슨의 말을 인용하지 않더라도 이미 4차 산업혁명이란 말로 익숙해진 신기술혁명시대가 도래해 있기 때문이다.
디지털 혁명 또는 지능정보사회로 불리는 거대한 사회 구조적인 변화가 진행 중이다. 토마스 쿤의 말을 빌리면 구시대가 신시대에 의해 뒤바뀌는 패러다임 시프트가 일어나고 있음이다. 역사적으로 패러다임 시프트가 일어나는 결정적인 분기점에서는 예외 없이 신기술과 기성 법제도가 부딪혔다. 중요한 것은 현재와 미래 간 승패의 관점이 아니라 끊임없는 대화를 통해 변증법적 제3의 길을 찾는 것이다.
19세기 문명사적 기술혁명의 전환이 일어날 때 미래를 발전적으로 수용해 포용적인 정치경제제도를 구축한 미국은 이후 흥했다. 반면 약탈적인 제도를 유지했던 멕시코는 쇠락의 길을 걸어 오늘에 이르렀다. 미국 애리조나주 노갈레스 시와 월경자(越境者) 차단벽을 사이로 인접해 있는 멕시코 소로나주 노갈레스 시를 방문해 보면 흥망성쇠의 극명한 차이를 확인할 수 있다. 우리라고 예외일까.
20세기 초 아르헨티나는 G5중 하나였다. 부에노스아이레스는 남미의 파리로 불렸다. 이탈리아 소년 마르코가 선진국 아르헨티나로 가정부 일을 하러간 엄마를 찾아 떠난 여행기를 담은 동화가 우리에게 잘 알려진 엄마찾아 삼만리이다. 실업과 생활고에 지쳐있는 지금의 아르헨티나 청년들은 자신들의 뿌리는 조부모의 나라 이탈리아라며 본향으로 이민을 가려 아우성이다. 숱하게 많은 국가들이 실패했음이다. 우리라고 예외일까.
신기술에 기성 제도가 조응하지 못하는 전환기에 룰 세터(rule-setter)인 정부의 역할은 결정적이다. 구한말(舊韓末) 상황을 반추해 보면 알 수 있다. 정부는 주도적인 자세로 디지털 혁명을 대비한 비전과 전략을 제시하고 실행해야 한다. 밀려오는 제4의 물결을 격한 규제와 통제가 아닌 선한 유인과 지원으로 균형 있게 대처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