크로아티아는 유고슬라비아 연방으로부터 독립한 지 겨우 27년, 강대국들에 둘러싸여 오랜 세월 외침에 시달려온 나라다. 1990년대 독립 추진과정에서는 유고 연방을 유지하려는 세르비아와 전쟁을 치르기도 했다. 이 나라의 수난사는 우리에게 깊은 공감과 일체감을 불러일으킨다. 특히 2013년 TV프로그램 ‘꽃보다 누나’가 방영된 이후 한국인들은 동유럽과 크로아티아의 매력에 빠져들었다.
그런데 대체 축구가 뭐기에 이 난리를 치는 걸까. 우승했다고 선수단 전원에게 훈장을 주고, 비행 쇼를 펼치는 건 그렇다 치자. 본선 진출 32개국에 끼지도 못한 나라에서 뜬금없이 거리응원을 한다. 1968년 7월엔 엘살바도르-온두라스의 축구전쟁까지 벌어지지 않았던가.
축구는 삶이다. 축구에는 삶처럼 드라마가 있다. 그래서 우리는 열광하고 한탄하고 절망한다. 그런데 삶은 축구공처럼 둥글지 않다. 그리고 축구보다 길다. 축구는 젊음과 체력으로 겨루는 승부이지만 삶은 젊음과 체력이 소진된 뒤에도 이어지는 전략과 의지의 승부다.
축구는 인구 순이 아니다. 인구 순이라면 중국은 벌써 몇 번 우승했어야 마땅하다. 크로아티아, 벨기에 같은 작은 나라들이 축구는 인구 순이 아니라는 걸 알려주었다. 그리고 2018 러시아 월드컵에서 두드러진 것은 볼 점유가 승부의 관건이 아니라는 점이다. 프랑스의 결승전 볼 점유율은 겨우 34.2%, 전체 일곱 경기의 평균 점유율이 49.6%로, 32개 출전국 중 18위에 불과했다. 그런데도 우승을 한 것은 빠른 축구를 한 결과다. 현대축구는 또 크게 변했다.
시의에 맞는 선택과 결정, 이것이 삶에 대한 축구의 가르침이 아닐는지. 축구도 삶도 골을 넣어야 할 때 넣고, 막아야 할 때 막을 수 있어야 이긴다. 오래 산다고 반드시 삶이 완성되는 게 아니며 어느 자리에 오래 머문다고 훌륭한 인물이 되는 것도 아니다. 삶에서든 축구에서든 욕구를 실현하려는 절실한 의지와, 노력을 통해 습득한 기량이 조화를 이루어야 한다. 그 조화에는 감독과 선수들의 융합, 선수들끼리의 화합이 반드시 필요하다. 무엇이든 노력한 만큼 거둘 수 있다.
월드컵은 영웅을 만든다. 지는 별을 아쉬워하며 뜨는 별을 맞는 것이 모든 스포츠 무대의 의미이다. 월드컵 기간에 우리는 다른 영웅들도 만났다. 동굴에 갇혔다가 17일 만에 구조된 태국 유소년 축구팀 아이들과 그들의 코치다. 특히 어린 소년들을 잘 이끈 승려 출신의 코치가 돋보였다. 전원 구조될 때까지 구조된 소년들의 신상정보를 공개하지 않고 구조 영상 보도와 인터뷰를 통제한 태국 당국의 조치도 영웅적이었다. 그들의 삶의 행로가 궁금하다. 영웅으로 남을 수 있기를 기대한다.
영웅의 출현을 고대하면서도 조심스러운 것은 영웅을 아끼기 때문이다. 어느 분야 어떤 자리이든 정상에 서려면 그다음에 대한 태세와 준비가 갖춰져 있어야 한다. 실은 크로아티아를 응원하면서도 준우승으로도 만족할 수 있기를 나는 바랐다. 박항서 감독이 이끄는 베트남 축구팀이 올해 1월 아시아축구연맹(AFC) U-23 챔피언십에서 결승전을 치를 때에도 우승보다는 준우승이 좋을 것 같았다. 2002 한일 월드컵의 영웅 홍명보 씨가 대표팀 감독을 맡을 때 나는 그가 맡지 않기를 바랐다. 실제로 그는 맡지 않느니만 못하게 됐다.
영웅은 꿈과 희망의 메시지를 주는 존재다. 하지만 영웅은 망가지기 쉽고, 일그러지지 않기 어렵다. 함께 아끼고 스스로 아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