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동걸 KDB산업은행 회장이 한국GM의 연구·개발(R&D) 법인 신설을 놓고 국정감사에서 집중 추궁을 받았다. 이 회장은 각종 법적 방법을 검토하겠다고 밝혔으나 그 실효성에 의문이 제기되고 있다. 시장에서는 생산법인과 R&D 법인 분리는 한국시장 철수를 염두에 둔 수순이라 단정 짓고, 또 다시 ‘먹튀 논란’을 제기하고 있는 상황이다.
21일 서울 중구 IBK기업은행 본점에서 열린 국회 정무위원회 국정감사에서 한국GM에 대한 산은의 어정쩡한 태도에 의원들의 질타가 이어졌다. 이 회장은 앞으로의 대응방법을 묻자 “(한국GM이) 법인 분할을 강행하면 돌이킬 수 없는 상황”이라며 “가처분 신청을 내는 것을 신중히 검토하고 있다”고 밝혔다.
◇소송 쟁점은...‘특별결의사항’ 해당할까=한국GM으로선 12월 연구개발 법인 설립을 앞두고 있다. 현재로써 산은의 카드는 법적 소송이다. 우선 조만간 절차적 문제 등을 이유로 주총 결의를 무효로 돌려달라는 가처분 신청을 법원에 낼 전망이다. 가처분 신청은 긴급한 사안 관련 정식 재판 전에 내는 임시 조치다.
이후 본안 소송에서 R&D 법인 설립 무효화를 다툴 계획이다. 쟁점은 이번 사안이 정관상 비토권(거부권) 요건인 ‘특별결의사항’인지다. 상법상 특별결의는 출석한 주주의 3분의 2 이상 동의가 필요하다. 산은이 한국GM을 상대로 낸 주주총회 개최 금지 가처분 신청 결정문을 보면 특별결의사항에는 ‘실질적 지분상황에 영향을 미치는 흡수·신설 합병 등 조직개편’ 또는 ‘총 자산가치 5% 이상 관계당사자 이전’ 등이 들어있다. 만약 R&D 법인 설립이 특별결의사항에 해당하면, 산은 없이 이 안건을 결의한 주총을 무효로 돌릴 수 있다.
산은은 앞서 가처분 심문에서 이러한 내용을 주장했으나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법원은 “한국GM이 2개 회사로 분할하더라도 단순 비례적·인적 분할 방식이므로 산은 등 주주들로선 생산법인과 신설 연구법인 각 지분을 현재 지분비율에 따라 그대로 배정받을 수 있다”고 판단했다. 또 R&D 법인 설립을 관계당사자 간 거래로 보기 어렵다고 봤다. 다만 가처분 신청과 본안 소송의 요건이 다른 만큼 소송에서 다른 결과가 나올 가능성도 배제할 순 없다.
최정 한국GM 부사장은 국감에서 “이번 R&D 법인 설립이 주주인 산업은행 거부권 대상은 아니라고 이해하고 있다”고 했다. 김앤장에서 이미 자문을 받은 것으로 알려졌다.
◇남은 출자금 4300억 원...반격 ‘카드’ 될까=산은에 남은 또 다른 카드는 연내 투자하기로 한 ‘4200억 원(3억7500만 달러)’이다. 산은은 5월 한국GM과 경영정상화 합의 당시 8400억 원(7억5000만 달러)을 지급하기로 하고, 현재까지 절반을 지급한 상황이다. 이 회장은 국감에서 4200억 원 추가 지원 계획 관련 “정책적 판단에 따라 할 수도, 안 할 수도 있다”면서도 “하는 게 바람직하다고 본다”고 밝혔다.
산은과 한국GM 기본계약서에 따르면 산은이 나머지 금액을 지원해야 계약이 최종 결정된다. 산은이 지원을 멈추면 한국GM을 10년간 묶어두기로 한 계약 자체가 파기된다는 것이다. 이 때문에 산은으로선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상황이다. 이 회장도 “10년 동안 한국GM이 생산을 유지하도록 하는 것이 목표라면 마저 투자를 집행해야 한다”고 밝혔다. 이 때문에 이 카드조차 산은이 쓰지 못하게 되는 것 아니냐는 비판이 나온다.
산은은 장기적으로 GM 본사를 상대로 국제상업회의소(ICC) 중재 신청도 검토할 수 있다. 이 경우 국제 문제로 확대되는 것이다. 실제 산은은 2010년 12월 ‘GM 대우 장기발전 기본합의서’ 체결 당시 ICC 중재 신청으로 GM대우를 압박하기도 했다. 당시 부담을 느낀 GM대우는 산은과의 협상을 택했다.
하지만 R&D 법인 신설 관련 ICC 분쟁으로 번질 가능성은 낮다. 산은에 불리할 수 있는 국제무대보단 국내법으로 해결한다는 것이 기본 원칙이다. 산은 관계자는 “ICC는 국내에서 할 방법이 없을 때 하는 것이지 실정법상 할 수 있는 일이 남아 있는데 굳이 거기까지 가지는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