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급격한 최저임금 인상에 경제 생태계 곳곳에서 경고음 = 문 정부 1기 경제팀의 핵심 키워드는 소득주도성장이다. ‘잘 살려면, 잘 벌어야 한다’는 철학은 문제 될 게 없다. 하지만 기업들의 곳간 사정을 고려하지 않고, 무리한 최저임금 인상으로 부작용이 속출하고 있다.
한국은행에 따르면 최저임금 영향권에 든 근로자가 1%포인트(P) 늘어나면 전체 근로자 중 비정규직 비율은 0.68%포인트 증가했다. 최저임금 영향권인 근로자들의 월평균 근로시간은 약 2.3시간 줄었고 이는 소득 감소로 이어졌다. 이들의 평균 월 급여는 89만 원에서 1만 원 깎였다. 자영업자와 중소기업이 인건비 부담을 덜기 위해 근로시간을 줄이거나, 직원을 해고한 것이다.
임현준 한은 경제연구원 연구위원은 “단정할 순 없지만 사업주가 최저임금 인상 부담을 피하고자 직원들의 근로 시간을 줄였고 급여까지 연쇄적으로 떨어진 것으로 볼 수 있다”고 평가했다.
이런 현상은 카드업계에서도 나타나고 있다. 정부는 지난해 최저임금 인상에 따른 소상공인 반발을 잠재우기 위해 우대 수수료를 받는 가맹점의 범위를 확대했다. 연 매출 5억∼10억 원인 가맹점의 수수료는 2.05%에서 1.4%로, 10억∼30억 원인 가맹점은 2.21%에서 1.6%로 떨어졌다.
이번 개편으로 카드사는 연간 7000억 원에 달하는 순손실을 입을 것으로 추산된다. 벼랑 끝에 내몰린카드사가 선택한 방법은 구조조정이다. 지난해 12월 현대카드는 창사 이후 처음으로 희망퇴직을 단행했고, 타사들도 인력 감축을 검토 중이다.카드사 ‘칼바람’은 수년째 이어지고 있다. 비씨카드를 제외한 7개 전업 카드사의 직원 수는 지난해 6월 기준 총 1만1649명이었다. 2017년 상반기(1만1874명)보다 225명 줄었다. 2015년(1만3115명)과 비교하면 1466명이 일자리를 잃었다.
이명식 상명대 교수는 “직접적 가격 통제로 정부가 시장 기능을 왜곡하고 있다”며 “서민경제 활성화에만 방점을 찍다 보니 카드사와 소상공인 간 정책 균형을 잃고 있다”고 우려했다.
◇기업 30% “투자 나설 테니 규제 풀어 달라” = 세밑 한국경제연구원이 매출 1000대 기업(176곳 응답)을 대상으로 설문 조사를 한 결과 절반(51.1%) 이상이 ‘기해년 경기가 악화할 것’이라고 전망했다. 비슷할 것이란 응답률은 44.3%였고, 개선될 것으로 기대하는 기업은 4.6%에 그쳤다.
그렇다면 기업들이 정부에 바라는 점은 무엇일까? 10곳 중 3곳(30.2%)이 ‘투자 활성화를 위한 규제 완화’를 1순위로 꼽았다. ‘노동 유연성 확대 및 임금 안정화’(26.1%)와 ‘환율 및 금리 안정화’(21.6%)에 중점을 둬야 한다는 응답이 뒤를 이었다. 제조업은 ‘노동 유연성 확대 및 임금 안정화’를 1순위로 꼽았다.
추광호 한경연 일자리전략실장은 “최근 제조업 취업자 수 감소 폭이 커지는 등 일자리 상황이 여전히 좋지 않은 상황에서 기업들의 경기 전망마저 어두워 우려스럽다”며 “그런데도 기업들이 내년도 경영전략으로 투자 확대를 고려하고 있는 만큼 정부에서도 적극적인 규제 완화 등 기업 활력 제고를 위한 정책적 환경을 조성해 주길 기대한다”고 말했다.
이런 목소리를 의식하듯 정부는 올해 경제정책 핵심 키워드로 ‘경제활력 제고’를 꺼내들었다. 대규모 기업투자 프로젝트 착공 지원과 대형 민간투자사업 발굴·조기 지원, 광역형 대표 공공프로젝트 예비타당성 조사 면제 등이 대표적이다. 자동차와 조선 등 전통적 주력산업 경쟁력을 살리기 위해 15조 원 규모의 금융지원 프로그램도 가동키로 했다.
홍준표 현대경제연구원 연구위원은 “성장세 확대를 위해 단기적으로 투자 활력을 높이고 중장기적으로 경제 체질 개선 노력을 지속해야 한다”며 “스태그플레이션(경기 침체와 물가 상승이 동시에 발생하는 것) 발생 가능성에 대비하고 경제 전반의 고용 창출력 회복에 주력해야 할 것”이라고 조언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