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겐 엄마로 살아가는 것이 가장 힘들다. 어리광을 부리던 아이는 어느새 함께하는 시간이 부족한 엄마를 이해한다. 훌쩍 커 버린 아이를 보며 미안한 마음이 드는 건 나뿐일까.
출근하는 순간 엄마라는 역할을 잊으려 애쓰며 살아온 지 10년. 그러나 유통업계를 출입하며 가끔은 엄마라서 분노하게 된다.
최근 발생한 남양유업의 곰팡이 주스 사건도 그중 하나다. 식품 회사의 이물질 사건은 어제오늘의 일이 아니다. 밀가루에서 쥐 머리가 나오기도 했고, 과자와 분유에서 벌레가 발견되거나 쇠붙이가 들어간 참치도 있었다. 케이크의 과일 토핑에서 곰팡이가 발견됐을 때는 실온에 방치한 소비자 과실로 치부한 적도 있다.
여러 이물질 사건을 접했지만 남양유업의 곰팡이 주스 사건에 유독 민감한 이유는 아마도 그들의 불편한 대응 방식을 엄마로서 이해하지 못했기 때문일 것이다.
남양유업은 유아용 주스 ‘아이꼬야’에서 곰팡이가 발견됐다는 소비자 제보 후 나흘이 지난 후에야 사과문을 게재하고 제품 판매 중단을 결정했다. 판매 중단이 결정되기까지 육아카페와 SNS는 성난 엄마들의 성토가 끊이지 않았다. 사과문을 게재한 후에도 남양유업을 향한 엄마들의 비난은 이어졌다. 책임을 회피하는 듯한 사과문의 문구가 원인이었다.
남양유업은 사과문을 통해 “아이꼬야 우리아이주스 레드비트와 사과 제품에서 곰팡이가 발견됐다는 클레임으로 고객님들께 심려를 끼쳐드려 진심으로 고개 숙여 사과의 말씀드린다”며 “제조 과정이 아닌 배송 중 발생한 핀홀 현상(Pin Hole)이 원인”이라고 밝혔다. 곰팡이가 문제가 아니라 곰팡이 클레임에 더 무게를 둔 듯한 부분은 실수로 치부한다 해도 배송 회사나 유통업체에 책임을 떠넘기기 급급한 해명은 소비자들을 우롱하는 인상마저 준다.
소비자, 특히 ‘엄마 소비자’는 대한민국에서 무시할 수 없는 존재다. 기업들은 엄마들의 의견을 받아들여 제품의 부족한 부분을 보완하거나 마케팅에 적극 활용한다. 엄마들의 마음을 잡지 못해 한국 시장에서 철수한 외국 기업도 여럿이다.
재작년 유한킴벌리는 아기물티슈에서 기준치를 넘는 메탄올이 검출돼 식품의약품안전처가 판매 중단 및 회수 조치를 내리자 발 빠르게 사과문을 게재하고 판매한 제품의 전액 환불을 약속했다. 유한킴벌리는 여전히 한국 기저귀 시장 1위 기업이다. 메탄올 사건에도 불구 물티슈 불매운동도 거의 없었다.
반면 남양유업에 대한 불신과 불매운동은 확산될 조짐이다. 정보를 공유하며 빠르게 진화하는 소비자와 함께 성장하지 못한 탓일 수도 있고 소비자와의 소통을 하지 못해서일 수도 있다.
10여 년 전쯤 ‘프로슈머(Prosumer, producer+consumer)’라는 신조어가 등장했다. 소비자는 생산자를 바꿀 만큼 막강한 힘을 지녔다. 그러나 남양유업의 행태는 여전히 소비자를 제품을 구매하는 사람이라는 과거 프레임에 가두고 있는 듯하다. 프로 소비자를 대하는 아마추어 기업의 낡은 대응에 오늘도 난 엄마라서 분노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