짧지만 재미있는 이야기이다. 당대에 한 명 나오기도 어렵다는 명필이 세 명이나 등장하고 그중 한 명이 호기를 부리다가 선배에게 한 수 가르침을 받는 결론까지. 하지만 이 이야기는 사실이 아닐 가능성이 매우 높다. 왜냐면 이 이야기가 기록된 당서는 수백 년 뒤에 기록된 것이고, 저수량과 다른 두 사람의 나이 차이가 마흔에 가까워 상식적으로 그런 이야기가 오고가지는 않았을 것이다.
그렇다면 이 이야기의 사실 여부를 떠나 정말 명필은 붓을 가리지 않았을까? 구양순 이전의 명필인 채옹(133~192)에 관한 기록인 ‘삼보결록(三輔決錄)’을 보면 “채옹은 글씨를 잘 쓴다고 매우 자부하고 있습니다. 이사와 조희의 필법에 모두 밝고, 고운 깁이 아니면 함부로 글씨를 쓰지 않으며, 장지의 붓, 좌백의 종이와 신(臣)의 먹을 씁니다.” 여기서 화자인 신은 위탄(179~253)이다. 위탄은 먹과 붓을 잘 만들었는데 그 역시 서예를 잘해서 광록대부(光祿大夫)란 벼슬까지 올랐던 명필이었다. 중간에 ‘장지의 붓’으로 등장하는 장지 역시 초서로 아주 유명한 명필이었고 붓을 만드는 실력도 뛰어났다. 그 유명한 서성(書聖) 왕희지(303~361)는 평범했을까? 당(唐) 장언원의 ‘서법요록(書法要錄)’에 “왕희지는 잠견지(蠶繭紙·누에고치로 만든 비단 종이)와 서수필(鼠鬚筆·쥐 수염 털로 만든 붓)로 난정집의 서문을 썼다”라는 기록이 있는 것으로 봐서 왕희지 역시 붓과 종이를 고르는 데 아무것이나 선택하지 않았음을 알 수 있다.
또, 구양순 이후 기록인 주현종(周顯宗)의 ‘논서(論書)’ 보면 “글씨를 잘 쓰는 사람은 붓을 가리지 않는다는 말이 있지만 이는 통설이라고 할 수 없다. 행서(行書)와 초서(草書)를 제외한 해서(楷書) 전서(篆書) 예서(隸書)를 쓰는 경우는 붓에 따라 결과가 달라지기 때문에 붓을 가리지 않을 수 없다”라는 대목이 나온다.
만년필의 무게 역시 천차만별인데 범위를 좀 좁혀보면 성인 남성의 경우 25~30g을 무겁지 않다고 느끼고, 여성은 7g 정도 가볍다. 무게중심은 가운데보다 전체 길이의 60% 정도 후중심이 좋고 굵기는 1.3㎝ 이내를 편안하게 느낀다. 몸통의 재질 역시 금, 은 등 셀 수도 없이 많은데 가벼운 플라스틱이 아니면 앞서 적은 기준을 맞추기 어렵다. 참고로 만년필 전문 잡지에서 2013년부터 2018년까지 6년 연속 1위를 한 펠리칸 M800은 공식적으로 28.2g(잉크 제외)에 재질은 플라스틱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