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준식의 ‘여든아홉이 되어서야 이 이야기를 꺼냅니다’는 이 땅에서 태어난 평범한 한 청년이 겪었던 6·25전쟁 체험담이다. 구체적으로 1951년 입대 직후부터 1953년 육군 보병학교로 차출되기까지의 치열한 전투의 나날을 기록하고 있다. 개인 체험담 속에서 독자들은 이 나라가 어떻게 여기까지 오게 되었는가에 대해 깊은 감동과 감사하는 마음을 느낄 것이다. 또한 우리가 조국을 어떻게 대해야 하는가를 생각해 볼 수 있을 것이다.
1931년생으로 전남 해남에서 태어난 저자는 올해 여든아홉 살이다. 북한에 적극적으로 동조했던 자에게 서훈이 주어지는 시대에 그는 자신이 살았던 시대를 이렇게 증언한다. “그들이 일으킨 침략 전쟁으로 인해, 해방 이후 아직 안팎으로 혼란스럽던 우리나라는 너무나 큰 고난과 마주한다. 내 나이 고작 스무 살 때였다.”
형이 입대하는 것을 보면서 그도 군에 가기로 마음먹는다. 왜 그렇게 위험한 결정을 했는가라고 묻는다면 스무 살 청년의 기억은 이렇다. “무너지는 이 나라를 구하기 위해 무엇이라도 해야 하지 않겠느냐는 말과 함께 맏형이 입대하였다. 나 역시 형과 같은 비장한 마음으로 같은 해 8월 24일 입대하게 된다.”
이런 민초들의 힘으로 이 나라가 여기까지 오게 되었음을 잊지 않아야 할 것이다. 그 험난한 시대를 겪었던 사람들은 하나같이 자신들이 노년에 이 땅에서 전개되는 일들에 대해 걱정이 앞선다. 나이가 든 분들의 노파심이라 간주해 버릴 수 있을지 모르지만, 세월이 주는 지혜의 한 단면으로 해석할 수도 있다. “평화가 일상이 된 지 오래다 보니, 사람들 모두 전쟁의 공포에 무뎌진 것 같다. 하지만 우리나라는 여전히 종전 선언이 이루어지지 않은 휴전상태이며, 지금 이 순간에도 세계 여러 나라에서는 전쟁으로 인해 많은 이들이 목숨을 잃는 등 고통을 겪고 있다.”
작은 부락에서도 좌우익으로 나뉘어 격한 공방을 벌였다. 집안의 남자들이 모두 섬으로 피란을 결정한 무렵, 맏형은 “남침한 공산당보다 부락민들이 더 무섭구나”라고 한탄한다.
그는 광주 제5015부대에서 백운산 토벌 작전에 투입되었고, 곧 수도사단 기갑연대로 옮겨 지리산 토벌 작전을 완수한다. 다시 금화지구로 출발해 중동부 전선 난초 고지, 독립 고지에서 치열한 전투를 벌이다 허벅지에 포탄 파편을 맞는 심한 부상을 입고 만다. 서울의 야전병원에서 응급치료를 받은 다음 서울 제36 육군병원을 거치면서 전선과 멀어진다. 1956년 11월 20일 마침내 5년이 넘는 군생활을 마치고 생환에 성공한다.
저자는 자신이 살아남았기 때문에 기록을 남길 수 있었다고 말한다. 이 시대를 사는 사람들은 젊은 날 자신의 목숨을 바칠 수밖에 없었던 수많은 사람들이 있었음을 잊지 않아야 한다. 그는 이 땅에 사는 사람들에게 “어떤 압박 속에서도 유혹에 넘어가지 말고 정신적 무장을 단단히 해 본인 스스로부터 키킬 수 있어야 한다”고 당부한다.
저자가 70세가 되었을 때 자필로 ‘6·25참전전투기록’을 작성해 둔 것을 손녀인 김나래 씨가 발견해 수정과 보완을 거쳐 세상에 빛을 보게 된 책이다. 우리 모두는 이 땅에서 한평생을 살다 간다. 빛나는 삶이든 그렇지 않은 삶이든 삶은 그 자체만으로 일회성이고 구체적이다. 이렇게 활자로 기록된 역사만이 영원한 생명을 얻을 수 있다. 저자와 그의 손녀의 노고에 깊은 감사를 드린다. 공병호연구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