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아코카 전 회장이 2일(현지시간) 파킨슨병과 관련된 합병증으로 로스앤젤레스(LA) 벨에어 자택에서 별세했다고 월스트리트저널(WSJ)이 보도했다. 향년 94세.
평범한 이탈리아 이민자 가정 출신인 아이아코카는 1946년 미국 포드자동차에 입사해 영업과 마케팅 부서 등에서 두각을 나타냈다. 그는 승진을 거듭한 끝에 1970년 12월 사장으로 취임했다.
그러나 포드 창업자의 손자인 헨리 포드 2세와 갈등을 겪으면서 결국 1978년 회사를 떠났다. 그러자 그를 눈여겨보던 크라이슬러가 냉큼 영입, 아이아코카는 1979년 회장 겸 CEO로 화려하게 자동차 업계에 복귀했다.
아이아코카는 파산 일보 직전에 내몰렸던 크라이슬러를 회생시키며 세계적인 명성을 얻게 됐다. 취임하자마자 유럽 자회사를 매각하고 고위 임원들을 해고하는 등 고강도 구조조정을 실시했다. 경영자로서 ‘연봉 1달러’를 처음으로 실천한 것도 아이아코카였다. 뼈를 깎는 비용 절감 의지를 강조하고자 자신이 먼저 연봉 1달러만 받겠다고 선언한 것이다. 그럼에도 은행들이 돈을 빌려주려 하지 않자 1980년 미국 정부의 15억 달러(약 1조7579억 원) 지급보증을 이끌어낸 극적인 부활 계기를 마련했다.
당시 미국 자동차업계는 두 차례의 오일쇼크 등으로 신차 수요가 침체해 극심한 어려움을 겪었는데, 아이아코카의 경영수완에 힘입어 크라이슬러는 1982년 제너럴모터스(GM)와 포드 등 미국 자동차 빅3 중 처음으로 흑자 전환에 성공했다.
자동차 산업에서 그의 업적은 누구와도 거의 비교할 수 없을 만큼 크다고 WSJ는 강조했다. 1960년대 초 미국에서 지금도 가장 인기 있는 차종 중 하나로 꼽히는 포드 ‘머스탱’ 개발을 주도했다. 크라이슬러에서는 1980년대 미국 가족여행에 혁명을 일으킨 새로운 유형의 차량 ‘미니밴’을 내놓았다. 또 크라이슬러가 재정위기에서 탈출하는 데 도움을 준 ‘K-Car’도 그의 작품이었다.
그는 1992년 말 크라이슬러에서 은퇴했으나 3년 뒤 억만장자 커크 커코리언의 적대적 인수·합병(M&A) 시도를 도왔다. 결국 1996년 M&A 시도는 실패로 끝났고 아이아코카에게 5년의 함구령이 내려지기도 했다. 이는 1998년 크라이슬러가 다임러와 합병하는 계기가 됐다. 크라이슬러는 이후 여러 차례 주인이 바뀐 끝에 피아트와 합치게 됐다.
아이아코카는 1999년 전기자동차업체 EV글로벌모터스를 설립하려고 시도하는 등 자동차 산업에 대한 관심의 끈을 놓지 않았으나 최근 수년은 자선활동과 집필에 집중했다.
또 아이아코카는 1984년 윌리엄 노박과 함께 쓴 자서전을 발간했으며 이는 700만 부 이상이 팔린 세계적인 베스트셀러가 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