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국 첨단 소재 수출 규제가 ‘안보상 필요하다’는 일본의 주장을 뒷받침할 만한 한국 정부 문건이 일본 언론에서 보도돼 파문이 일고 있다. 공개된 문건은 우리나라의 한 의원이 산업통상자원부로부터 제출받은 ‘전략물자 무허가 수출 적발 현황’으로, 5월 국내 언론이 이미 보도한 내용을 ‘전략물자 밀수출’이라는 자극적인 제목으로 재탕한 것이다. 이에 대해 우리 정부는 “정부가 밀수출을 적발해 막거나 회수한 사안”이라며 보도 내용을 반박하고 있어 해당 문건 보도 의도와 입수 경로를 둘러싸고 한일 간 또 다른 공방이 예상된다.
일본 극우 성향의 산케이신문 계열 후지뉴스네트워크(FNN)는 아베 신조 정부가 대한국 수출 규제 이유로 주장하는 한국의 수출관리 문제를 입증할 만한 한국 정부 문건을 단독 입수했다며 10일(현지시간) 보도했다.
FNN이 공개한 문건에 따르면 2015년부터 2019년 3월까지 약 4년간 한국에서 무기로 전용될 수 있는 전략물자가 밀수출된 건수는 156건에 달했다. 이 중에는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의 이복형인 김정남 암살 당시 사용된 신경가스 ‘VX’ 원료가 말레이시아로 밀수출된 건을 비롯해 일본의 이번 수출규제 강화 품목에 포함된 불화수소(에칭가스)도 아랍에미리트(UAE)로 몰래 빠져나간 것으로 나타났다.
유엔 안전보장이사회 대북 제재위원회 패널을 지낸 후루카와 가쓰히사는 FNN에 “대량 살상무기와 관련한 규제 제품을 둘러싼 수출규제 위반 사건이 이렇게 많이 적발돼 있었는데 한국 정부가 지금까지 공개하지 않은 사실에 놀랐다”며 “이 정보를 보면 한국을 백색국가로 다루기는 어렵지 않나”라며 의문을 표했다.
노가미 고타로 일본 관방 부장관은 이날 오전 자국 정부 수출 규제에 대해 “이번 조치는 세계무역기구(WTO)에서 인정하는 안보를 위한 수출관리 제도의 적절한 운용에 필요한 재검토에 해당된다”고 재차 강조했다. 한 일본 기자가 “한국 국회의원이 정부로부터 입수한 리스트에서 무기 전용 가능 전략물자가 4년간 156건 밀수출된 것으로 기재됐는데, 이 리스트의 존재를 파악했는지 또 수출 규제에 리스트가 영향을 미쳤는지”를 묻자 “한국이 적절하게 수출관리를 하지 못한다고 우려되는 사례가 있다”며 “그러나 개별 사례에 대한 언급은 보류하겠다”고 답했다.
실제로 한국에서 전략물자가 북한으로 밀반출됐는지의 여부를 떠나 FNN의 이날 보도로 수출 규제 책임이 한국에 있다는 일본 정부의 공세가 더욱 거세질 전망이다. 아베 정부는 최근 대한국 수출 규제에 대해 한국 정부의 수출 관리가 부실해 무기 전용이 가능한 전략물자들이 북한으로 유입될 수 있기 때문에 규제를 강화해야 한다는 논리를 펴고 있다.
이날 FNN의 보도에 우리 정부는 강하게 반박했다. 산업통상자원부는 “156건은 우리 사법당국이 전략물자 무허가 수출을 적발한 실적이며, 미국 등 외국도 무허가 수출 적발 실적을 공개하고 있다”고 주장했다. 아울러 “일본은 총 적발건수를 공개하지 않고 일부만을 선별해 공개하고 있다”고 비판했다. 이어 일본 측의 불화수소 북한 반출 의혹에 대해서는 “2017년 1월 이후 일본에서 수입한 불화수소가 북한으로 유출된 증거는 발견되지 않았다”고 강조했다.
아울러 “적발 리스트에 포함된 불화가스 관련 무허가 수출사례는 2015~2016년 일부 국내 업체가 아랍에미리트, 베트남으로 관련 제품을 허가 없이 수출한 것을 적발한 것으로 일본산 불화수소를 사용한 것이 아님을 확인한 것”이라고 설명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