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날씨가 덥고 습해 입맛이 떨어지면 냉면과 국수가 당긴다. 특히 밀가루와 콩가루를 섞어 한참을 치댄 반죽을 홍두깨로 얇게 밀어 끓여 먹는 ‘엄마표’ 손칼국수가 너무너무 맛있다. 고르지 않은 두께로 두툼하게 썬 면은 쫄깃쫄깃하고, 감자와 애호박, 부추를 넣어 끓인 뿌연 국물은 그렇게 시원할 수가 없다. 엄마표 손칼국수는 갓 버무린 매콤한 김치를 면 위에 척 걸쳐 후루룩 소리를 내며 먹어야 제맛이다. 땀을 흘리며 한 그릇 뚝딱 비우면 복날 더위쯤은 쉽게 꺾을 수 있다.
내 자식에게도 ‘엄마표’ 손칼국수를 먹이고 싶어 앞치마를 둘렀다. 모든 재료를 준비한 후 엄마와 전화 통화를 하며 똑같은 방식으로 끓였다. 팔이 아프도록 반죽을 치대고 밀고 썰어 끓였건만 맛이 2% 부족하다. ‘우리 엄마 손’ 맛이 빠져서 그런가 보다. 실망한 어미의 마음을 읽었는지, 두 딸은 서로 눈빛을 나누더니 “할머니가 끓여 주시는 국수랑 맛이 똑같다”며 후루룩 소리를 내며 맛있게 먹어 준다. 속 깊은 자식들이 참 고맙다. 팔불출 소리를 들어도 어쩔 수 없다.
초복날엔 오랜 지인들과 을지로에서 냉면을 먹었다. 평안도 사투리가 푸짐한 곳에서 수육에 소주도 한잔 곁들일 요량으로 을지면옥을 찾았다. 국내에서 가장 얇은 면이라니 ‘목구멍으로 끊어 먹겠다’는 (별난) 생각도 했다. 오전 11시 30분. 문 연 지 몇 분 지나지 않았다는데 대기줄이 늘어섰다. 날이 날인 만큼 기다릴 수밖에. 대기줄에 서 있던 누군가가 한국인의 ‘오래가게(일본식 한자어 표기인 ‘노포[老鋪]’를 대신하는 서울만의 새로운 이름)’ 사랑이 대단하다고 했다. 내가 보기엔 한국인의 ‘면’ 사랑이 엄청난 것 같다.
국수든 냉면이든 라면이든 우동이든 면 음식은 가락이 중요한 법. 그렇다면 면의 가락은 ‘면발’일까 ‘면빨’일까? 쫄깃쫄깃한 면을 떠올리면 ‘면빨’이라고 써야 할 것만 같지만 ‘면발’이 바른 표기이다. 물론 말할 때는 [면빨]이라고 소리 내야 한다. 이유는 ‘표준발음법’ 제6장에서 찾을 수 있다. “합성어 중에 표기상으로는 사이시옷이 없더라도 관형격 기능을 지니는 사이시옷이 있어야 할 경우에는 된소리로 발음한다”고 나와 있다. 밤공기[밤꽁기], 손재주[손째주], 눈동자[눈똥자] 등도 이 규칙을 따른 말이다.
‘말빨’ ‘끗빨’은 어떻게 써야 할까? 이 또한 글로 적을 때는 ‘말발’, ‘끗발’이라고 써야 바르다. 이때의 ‘-발’은 기세나 힘을 나타낸다. 약발, 사진발, 화장발, 조명발처럼 효과의 의미를 더하는 ‘-발’ 역시 말할 때는 된소리 [빨]로 발음해야 한다.
평양냉면의 가장 큰 매력은 메밀을 많이 넣어 거칠고 굵은 면발이다. 그 맛은? 평양냉면 본연의 매력을 가장 섬세하게 표현한 백석의 시 ‘국수’로 대신할까 한다. “아, 이 반가운 것은 무엇인가. 이 희스무레하고 부드럽고 수수하고 슴슴한 것은 무엇인가. 겨울밤 쩡하니 익은 동치밋국을 좋아하고 얼얼한 댕추가루를 좋아하고 싱싱한 산꿩의 고기를 좋아하고 그리고 담배 내음새 탄수 내음새 또 수육을 삶는 육수국 내음새 자욱한 더북한 삿방 쩔쩔 끓는 아르궅(아랫목)을 좋아하는 이것은 무엇인가” jsjysh@