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경아의 라온 우리말터] ‘면빨’이라 말하고 ‘면발’이라 쓴다

입력 2019-07-17 05:00 수정 2019-07-24 10: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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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부 교열팀장

햇볕이 무르익었다. 초복을 지나 중복, 말복이 늘어서 있으니 뜨겁지 않으면 오히려 이상한 일이다. 반갑지 않은 손님 장마까지 찾아온 이맘때면 소화가 잘되고 영양도 만점인 고단백·저지방 음식을 찾는 이들이 많다. 삼계탕·민어탕·장어탕집이 북적거리는 이유일 게다.

나는 날씨가 덥고 습해 입맛이 떨어지면 냉면과 국수가 당긴다. 특히 밀가루와 콩가루를 섞어 한참을 치댄 반죽을 홍두깨로 얇게 밀어 끓여 먹는 ‘엄마표’ 손칼국수가 너무너무 맛있다. 고르지 않은 두께로 두툼하게 썬 면은 쫄깃쫄깃하고, 감자와 애호박, 부추를 넣어 끓인 뿌연 국물은 그렇게 시원할 수가 없다. 엄마표 손칼국수는 갓 버무린 매콤한 김치를 면 위에 척 걸쳐 후루룩 소리를 내며 먹어야 제맛이다. 땀을 흘리며 한 그릇 뚝딱 비우면 복날 더위쯤은 쉽게 꺾을 수 있다.

내 자식에게도 ‘엄마표’ 손칼국수를 먹이고 싶어 앞치마를 둘렀다. 모든 재료를 준비한 후 엄마와 전화 통화를 하며 똑같은 방식으로 끓였다. 팔이 아프도록 반죽을 치대고 밀고 썰어 끓였건만 맛이 2% 부족하다. ‘우리 엄마 손’ 맛이 빠져서 그런가 보다. 실망한 어미의 마음을 읽었는지, 두 딸은 서로 눈빛을 나누더니 “할머니가 끓여 주시는 국수랑 맛이 똑같다”며 후루룩 소리를 내며 맛있게 먹어 준다. 속 깊은 자식들이 참 고맙다. 팔불출 소리를 들어도 어쩔 수 없다.

초복날엔 오랜 지인들과 을지로에서 냉면을 먹었다. 평안도 사투리가 푸짐한 곳에서 수육에 소주도 한잔 곁들일 요량으로 을지면옥을 찾았다. 국내에서 가장 얇은 면이라니 ‘목구멍으로 끊어 먹겠다’는 (별난) 생각도 했다. 오전 11시 30분. 문 연 지 몇 분 지나지 않았다는데 대기줄이 늘어섰다. 날이 날인 만큼 기다릴 수밖에. 대기줄에 서 있던 누군가가 한국인의 ‘오래가게(일본식 한자어 표기인 ‘노포[老鋪]’를 대신하는 서울만의 새로운 이름)’ 사랑이 대단하다고 했다. 내가 보기엔 한국인의 ‘면’ 사랑이 엄청난 것 같다.

국수든 냉면이든 라면이든 우동이든 면 음식은 가락이 중요한 법. 그렇다면 면의 가락은 ‘면발’일까 ‘면빨’일까? 쫄깃쫄깃한 면을 떠올리면 ‘면빨’이라고 써야 할 것만 같지만 ‘면발’이 바른 표기이다. 물론 말할 때는 [면빨]이라고 소리 내야 한다. 이유는 ‘표준발음법’ 제6장에서 찾을 수 있다. “합성어 중에 표기상으로는 사이시옷이 없더라도 관형격 기능을 지니는 사이시옷이 있어야 할 경우에는 된소리로 발음한다”고 나와 있다. 밤공기[밤꽁기], 손재주[손째주], 눈동자[눈똥자] 등도 이 규칙을 따른 말이다.

‘말빨’ ‘끗빨’은 어떻게 써야 할까? 이 또한 글로 적을 때는 ‘말발’, ‘끗발’이라고 써야 바르다. 이때의 ‘-발’은 기세나 힘을 나타낸다. 약발, 사진발, 화장발, 조명발처럼 효과의 의미를 더하는 ‘-발’ 역시 말할 때는 된소리 [빨]로 발음해야 한다.

평양냉면의 가장 큰 매력은 메밀을 많이 넣어 거칠고 굵은 면발이다. 그 맛은? 평양냉면 본연의 매력을 가장 섬세하게 표현한 백석의 시 ‘국수’로 대신할까 한다. “아, 이 반가운 것은 무엇인가. 이 희스무레하고 부드럽고 수수하고 슴슴한 것은 무엇인가. 겨울밤 쩡하니 익은 동치밋국을 좋아하고 얼얼한 댕추가루를 좋아하고 싱싱한 산꿩의 고기를 좋아하고 그리고 담배 내음새 탄수 내음새 또 수육을 삶는 육수국 내음새 자욱한 더북한 삿방 쩔쩔 끓는 아르궅(아랫목)을 좋아하는 이것은 무엇인가” jsjys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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