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스크 칼럼] 불통이 호민과 폭민 정치를 부른다

입력 2019-11-10 09: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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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성호 산업부장/부국장
▲박성호 산업부장/부국장
조선 중기 문인이자 정치가, 작가, 시인이었던 허균은 ‘호민론’을 통해 백성을 항민(恒民)과 원민(怨民), 호민(豪民)으로 나눴다. 지배층이 잘하나 못하나 복종하는 게 ‘항민’이다. 그냥 원망만 하는 백성이 ‘원민’이다.

천하에 백성이 오직 두려운 존재라는 민주적 시각을 가졌던 허균은 백성 중에서도 ‘호민’을 가장 겁나는 존재로 꼽았다.

호민은 임금이 자신들의 뜻을 알도록 무력을 행사하는 백성이다. ‘이거 정말 안 되겠네. 한 판 뒤집어야겠다’며 쟁기와 몽둥이를 들고 나서는 이들이다. 그들이 손에 쥔 것은 자신의 목소리를 전하는 마지막 도구였던 셈이다.

허균보다 1900년 량 앞선 시대를 살았던 철학자 아리스토텔레스도 허균의 ‘호민론’과 비슷한 정치해석을 내놨다.

그는 어떤 정치체제에도 ‘타락한 형태’가 있다고 갈파했다. 군주정은 폭군정, 귀족정은 과두정, 민주정은 중우정이라는 소위 ‘정치체제 오류’의 가능성을 내포하고 있다는 통찰이다.

중우정치는 다수의 어리석은 민중이 이끄는 정치형태다. 아리스토텔레스의 스승 플라톤은 다수의 난폭한 시민들이 이끄는 ‘폭민 정치’라는 표현을 썼다.

2010년 12월 17일 튀니지 소도시 한 시장에서 발생한 청년 노점상의 분신으로 시작된 시위는 이집트, 예멘, 바레인, 시리아, 리비아로 번져 ‘아랍의 봄’을 불러왔다.

외부에는 독재 항거 정치시위로 널리 알려졌지만 근본배경은 고공행진하고 있었던 청년실업률이었다. 폭발 직전에 있었던 국민들의 ‘경제 불만’이라는 뇌관에 독재정치가 방아쇠를 당겼을 뿐이다. 독재에 따른 경제 후퇴는 실업률 상승으로 직결됐고 이는 허균의 ‘호민’을 현실로 불러들였다. 독재정부라도 국민과 진정한 대화를 나눴다면 양상은 달라졌겠지만 놀란 독재자들은 강경진압 또는 야반도주를 택했다.

‘아랍의 봄’ 이후 아랍 정치경제 상황은 폭민 정치에 가깝다. 여전히 높은 청년 실업률과 경제난, 권력형 부패에 대한 아랍 국민들의 분노가 레바논, 이라크, 이집트 등 중동을 휩쓸고 있다. 독재를 몰아내고 기대치는 높아졌는데 정치인들의 걸음은 더디기만 하니 불만이 제기될 때마다 분노한 국민은 거리로 쏟아져 나온다.

국제통화기금(IMF)은 “(중동지역) 고용 문제가 사회적 긴장을 높이고 있다”라고 진단했고 시위를 통해 총리 사퇴를 끌어낸 레바논에서는 ‘시스템 전체를 통째로 바꾸길 원한다’라는 보도(AFP통신)가 나오고 있다.

호민 창궐도 폭민 정치도 ‘소통의 문제’에 기인한다.

권력지배계층이 백성들의 목소리를 온전히 듣지 않으면 ‘호민’이 창궐한다. 소통하되 목소리 큰 이들에게만 귀가 치우쳐 열려 있으면 폭민 정치의 함정에 빠지게 된다.

중국 한나라 때는 패관(稗官)이라는 채집관을 뒀다고 한다. 패관은 저잣거리의 가담항어(街談巷語)를 모아 서설을 만들었다. 기원전 200년 전에 중국 황제가 백성들의 민심 동향에 이렇게까지 촉을 세웠던 게 오히려 신기할 따름이다.

대기업의 한 임원은 사석에서 “문재인 정부 초기에 재계는 적폐로 낙인찍혀 목소리를 낼 수 없었다. 묵묵히 제 할 일 하면 정부도 물밑에서나마 소통하며 도와주지 않을까 기대했다”라고 전했다. 그는 순진했다고 털어놨다. 규제 완화 등 경제 관련 뿐 아니라 정치, 사회, 외교 등 모든 부문에서 지금 정부는 듣고 싶은 것만 듣는 걸 2년 6개월 동안 봤다고도 했다. 광화문 광장과 서초동 사거리에 나선 이들을 이해할 수 있고 자신이 직접 동참하지 못하는 처지가 안타까울 뿐이라고 털어놨다.

박근혜 정부와 다르게 ‘열린 소통’을 지향하는 문재인 정부는 억울하거나 답답할 수 있다. 진정성을 몰라준다고 서운해할 수도 있다.

그렇다면 현대 경영학 창시자인 피터 드러커의 말을 유념해 볼 필요가 있다. 드러커는 “내가 무슨 말을 했느냐가 중요한 게 아니다. 상대방이 무슨 말을 들었느냐가 중요하다”라고 날카롭게 지적했다. 타다 기소를 놓고 검찰과 법무부, 청와대가 서로 딴소리하는 것을 보면 내가 한 말을 상대방이 어떻게 받아들였는지 전혀 신경 쓰지 않았다는 게 고스란히 드러난다.

문 정부는 지금부터라도 좌우 양쪽 귀를 모두 열고 경청해야 한다. 민심은 티백(Tea Bag)과 같다. 겉만 보고 판단하지 말아야 한다. 측근들 말만 믿지 말고 직접 뜨거운 물에 넣어봐야 한다. 그래야 정확한 맛과 향, 색깔을 알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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