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수첩] “겨우 50원?” 칠레 정부의 오만이 부른 비극

입력 2019-11-26 05: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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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서영 국제경제부 기자

인기리에 종영된 드라마 ‘동백꽃 필 무렵’에서 향미는 “다들 나는 열외라고 생각하나 봐”라는 대사로 시청자의 등골을 오싹하게 했다. 온 동네가 연쇄 살인마 ‘까불이’ 때문에 벌벌 떨고 있는 와중에 ‘설마’ 자기는 아닐 것이라고 근거 없이 안심하는 사람들에 대한 강력한 경고 메시지였다.

비슷한 일은 드라마 밖에서도 벌어진다. 지난달 20일 칠레 정부는 지하철 요금 고작 ‘30페소(약 50원)’ 인상으로 도심이 마비되고 급기야 30년 만에 국가비상사태를 발령해야 하는 사태가 올 것이라 상상이나 했을까.

이런 ‘설마’가 가져온 결말은 참혹했다. 시위는 전국으로 번졌고 그 와중에 지하철이 불탔으며 상점이 약탈당했다. 칠레 인권단체에 따르면 19명이 죽고 538명이 다쳤으며 2840명이 체포됐다.

칠레 정부는 “겨우 50원 인상인데 설마 무슨 일이 있을까”라고 대수롭지 않게 여겼을 것이다. 그러나 칠레가 당면한 현실은 겨우 50원으로 풀릴 만큼 간단치가 않다. 칠레 통계국에 따르면 현지 노동자 절반이 한 달에 550달러를 채 벌지 못한다.

2017년 유엔개발프로그램(UNDP)이 발간한 보고서는 36개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회원국 중 멕시코에 이어 칠레를 가장 불평등이 심한 국가로 꼽았다. 칠레 소득 상위 0.1%가 전체 소득의 19.5%를 차지하고 있다. 현실만큼이나 칠레인의 감정도 팍팍하다. 칠레가 불평등하다고 응답한 비율이 2000년 42%에서 2016년 52%로 높아졌다.

경제의 골은 갈수록 깊어지는데, 이 복잡하고도 무거운 문제에 대해 정부가 짜낸 방안이 겨우 50원 인상이라니, 그 ‘참을 수 없는 가벼움’에 시민의 분노가 폭발한 것이다. 다 같이 고통을 감내하자고 호소하면서 자기 살을 도려내는 희생이라도 보였다면 얘기는 달라졌을지 모른다.

50원 인상 방침을 발표한 그날, 세바스티안 피녜라 칠레 대통령은 고급 레스토랑에서 우아한 저녁 식사를 즐겼다. 그 장면이 찍힌 한 장의 사진이 소셜미디어에 올라오자 사람들은 참을 수 없었다. 고작 50원에 설마 반발이 일어날까 싶었던 정부의 오만이 칠레 역사를 예기치 못한 방향으로 끌고 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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