르노삼성은 10년마다 색깔을 바꿨다.
20세기 말, 삼성 SM5는 일본차(닛산) DNA가 가득했고, 준중형차 시장에 출사표를 낸 SM3 역시 닛산 ‘블루버드 실피’와 다를 게 없었다.
2000년대 말에는 점진적으로 르노 감성을 내세웠다. 세단과 SUV를 막론하고 속내는 철저하게 프랑스 차를 닮아갔다.
2020년대에 들어서 르노삼성은 또 다른 10년을 예고했다. 핵심은 하나의 시장, 나아가 하나의 세그먼트에 머물러 있지 않겠다는 것이었다.
디자인과 감성 품질, 지향점 역시 프랑스 차의 굴레를 벗어나기 시작했다. 그리고 그 중심에 쿠페 스타일 SUV ‘XM3’를 내세웠다.
◇가장 진보한 ‘세그먼트 버스터’=새 모델은 SUV와 스포츠 쿠페의 뚜렷한 경계선 위에 자리 잡았다.
XM3는 유럽기준 B세그먼트 SUV다. 한국에선 현대차의 코나와 기아차 셀토스, 쉐보레 트레일블레이저, 쌍용차 티볼리와 경쟁한다.
국내 완성차 시장에서 이례적으로 5개 전체 브랜드가 이 시장에 뛰어들었다. 5파전이 시작된 만큼, 치열한 경쟁도 불가피해졌다.
XM3의 가장 큰 장점은 디자인이다. 한 시대를 앞서간 디자인에 자신감을 얻은 르노삼성은 경쟁자마저 확대했다. C세그먼트 세단, 그러니까 준중형차 아반떼와 K3까지 경쟁상대로 삼겠다는 계획이다. 불가능한 전략이 아니다.
실제 눈앞에 마주선 XM3의 전체 레이아웃은 신선하다. 그럼에도 그 속에 담긴 내용물은 ‘르노삼성’의 전형적인 모습이다. 앞모습과 뒷모습에 거부감이 전혀 없는 것도 이런 이유다.
차 높이(1570mm)는 동급 B세그먼트 SUV 가운데 낮은 편. 반면 넉넉한 최저지상고(186mm)가 절묘하게 맞물려 “크고 우람하다”는 느낌보다 “길고 날렵하다”는 인상이 가득하다.
◇이 시대 르노 얼라이언스 인테리어의 정점=인테리어에도 개성이 뚜렷하다.
먼저 대시보드에 ‘고급짐’이 가득하다. 구석구석을 꾹꾹 눌러보면 말랑말랑한 감성이 묻어난다.
소재만 따져도 경쟁차보다 한 등급 위다. 반면 1열과 2열의 소재 차이는 꽤 크다. 1열은 고급스럽지만 2열은 평범하다는 뜻이다.
동급최대의 트렁크 용량(513리터)도 장점. 다만 구성 자체가 좌우로 넓은 게 아닌, 트렁크 깊이를 넉넉하게 짜냈기 때문에 호불호가 갈릴 것으로 보인다.
시승차는 1.3 직분사 가솔린 엔진을 바탕으로 터보를 더한 TCe 260이다. 독일 메르세데스-벤츠와 공동 개발한 새 엔진이다. 앞으로 르노 그룹의 소형차에 두루 쓰이게 된다.
최고출력은 152마력, 순간 파워를 좌우하는 최대토크는 가솔린 V6 2.5ℓ 수준과 맞먹는 26.0kgㆍm에 달한다.
여기에 맞물린 기어박스는 독일 게트락 사가 개발한 7단 듀얼 클러치 방식이다. 이를 바탕으로 복합연비 13.7km를 기록한다.
◇초반 가속은 평범, 진가는 터보가 만든다=초기 움직임은 제법 무겁다.
운전대가 무겁고 가속페달의 반응도 더디다. 자연흡기 1.3 리터 직분사 엔진의 한계가 초반부터 일찌감치 드러난다.
반면, 터보가 이빨을 드러내기 시작하면 차 성격은 금방 뒤바뀐다. 가속페달의 작은 동작조차 낭비 없이 바퀴까지 이어진다.
차고 넘치는 가속력 뒤에는 7단 DCT가 자리한다. 이리저리 바쁘게 최적의 회전수를 절도 있게 찾아다니는 모습도 드라이버의 자신감을 부추긴다.
직분사 방식의 1.3 터보 엔진은 디젤 2.0에 비할 바 아니지만 웬만한 자연흡기 2.0 가솔린 엔진을 가볍게 넘어서는 토크를 지녔다.
가속 때, 또는 급제동 때 차가 앞뒤로 꿀렁거리는 스쿼드나 노즈 다운도 꽤 절제돼 있다. 차 높이와 너비와 비교해 축간거리를 충분히 뽑아낸 덕이다.
유럽 시장을 겨냥한 만큼, 기본적으로 서스펜션은 탄탄하다.
고속 영역에서도 꽤 안정적으로 달리고 무엇보다 직진성이 강하다. 좌우로 ‘트위스트’를 춰도 차는 반듯하게 제자리를 찾아 돌아온다.
제법 각도가 큰 코너를 앞두고 과감하게 차를 내던져도 머릿속 회전 곡선을 충직하게 따라 돈다. 기본으로 달린 금호타이어 솔루스 역시 탄탄한 사이드 월을 앞세워 끈덕지게 차체 눌림을 붙잡아낸다.
덕분에 코너와 코너의 정점을 잘라먹을 때도 정교한 몸놀림이 가능하다. 유럽차 다운 묵직한 핸들 감각도 이런 거동에 한 몫을 보탠다.
XM3는 이미 절반의 성공을 거뒀다. 시장이 납득할만한 가격을 내세웠고, 누가 봐도 좋아할 만한 디자인을 내세웠다. 여기에 꽤 괜찮은 파워트레인을 맞물렸다. 어디에 내놔도 모자람이 없는 편의 장비도 가득하다.
새 모델은 스포츠 쿠페와 SUV의 날카로운 경계선 위에 서 있다. 어느 한쪽에도 치우침 없이 두 가지 특성을 ‘양립’하는 데도 성공했다.
무엇보다, 꽤 잘 생긴 XM3 덕에 ‘르노삼성’이라는 브랜드 자체가 달라 보이기 시작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