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의 세계적 확산으로 경기 불황이 선명해지면서 마니아 층이 두터운 애플의 신제품 전략에 비상등이 커졌다.
미국 라디오 프로그램 프로듀서 애덤 마이클 씨는 26일 월스트리트저널(WSJ)과의 인터뷰에서 “지난주 해고된 후 긴축 재정에 들어갔다”며 “코로나19가 가져온 경제 불황으로 씀씀이를 줄이기 위해 가장 먼저 신형 아이폰을 사지 않기로 했다”고 말했다. 이는 그에게 큰 변화다. 그동안 그는 2년마다 가족들의 스마트폰을 전부 애플 제품으로 교체해줬기 때문이다. 한 번 살 때마다 4대씩 구입했는데, 이제는 신형폰을 살 경제적 여유가 없다는 것이다.
그러나 코로나19로 수요가 얼어붙을 조짐이 보이면서 앞날이 불투명해졌다. 코로나19가 창궐하면서 음료에서 항공사에 이르기까지 소비자 수요가 최대의 불확실 요인으로 급부상하고 있다. 유럽과 미국의 봉쇄 조치는 전례 없는 급격한 경기 침체를 일으켜 많은 기업이 앞날을 점치지 못하고 있다.
애플의 경우, 가을에 출시하는 아이폰은 전체 매출의 상당 부분을 차지한다. 특히 올해는 5G 대응 스마트폰을 출시할 것으로 알려져 그 어느 때보다 소비자들의 관심이 클 터였다. 그동안 애플은 경제 환경에 휘둘리지 않고 난국을 헤쳐왔지만, 이번 코로나19 만큼은 쉽지 않아 보인다.
바이러스 진원지인 중국에선 공장이 폐쇄돼 아이폰 공급이 감소했다. 유럽과 미국에도 감염이 확산하면서 애플은 매장 폐쇄는 물론 실리콘밸리 사옥의 거의 모든 활동이 중단된 상태다.
이런 상황에서 애플의 높은 가격 책정은 상황을 더욱 복잡하게 만들고 있다. 애플은 3년 전 주력 모델의 가격을 1000달러로 50% 끌어 올렸다. 이에 힘입어 애플은 출하량이 감소하는 와중에도 매출은 늘었다.
문제는 부품이다. 부품 발주 상황은 아이폰 생산 대수를 좌우한다. 그러나 코로나19로 인한 불확실성은 애플 공급 업체들도 당혹스럽게 만든다. 공급 업체들은 올해 아이폰 출하 대수가 애널리스트 대부분이 예상한 대로 증가하는 게 아니라 오히려 감소할 것을 우려하고 있다. 2018년 애플이 수요를 잘못 예측해 생산을 줄였을 때 과잉 재고와 가동률 저하로 타격을 입은 공급업체도 적지 않았다.
코로나19 확산은 이미 스마트폰 업계에 큰 타격을 미치고 있다. 시장조사기관인 스트래티지에 따르면 중국의 봉쇄 조치를 배경으로 2월 세계 스마트폰 출하 대수는 전년 동월 대비 38% 감소했다. 1개월 간의 침체로는 사상 최대다.
5G 대응 스마트폰의 수요 예측은 비용 면에서 아주 중요하다. 5G 대응 스마트폰은 더 비싼 모뎀이나 고용량 메모리를 필요하기 때문이다. 애널리스트들은 원가가 대당 100달러 증가할 것으로 보고 있다.
수요 예측 외에도 애플에 주어진 상황은 녹록지 않다. 애플 본사가 있는 미국 캘리포니아주에 외출제한령이 내려지면서 직원들이 재택 근무를 하게 돼 신제품 개발에 어려움을 겪고 있다. 이에 애플은 신제품 개발 지연을 피하려 총력을 기울이고 있다. 사정에 정통한 소식통에 따르면 중국에 출장 가지 못하는 미국 엔지니어링 팀은 화상 회의로 중국인 동료에게 아시아 공장에서의 아이폰 시제품 조립을 지시하고 있다. 애플은 이런 사태를 예상해 1월에 이미 예행 연습을 했다고 한다.
또 애플은 지난주 일부 엔지니어에게 제품 후보의 시제품을 집에 가져가는 것도 허용하기 시작했다. 과거 외부에서 코딩을 한 소프트웨어 엔지니어를 해고하고, 개발 중인 아이폰을 운반하는 데 보안회사까지 고용한 애플로서는 이례적인 조치다. 애플은 직원들에게 이러한 새로운 대응 지침에 대해 함구령을 내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