근저당권설정계약을 체결한 뒤 제3자에게 근저당을 설정해준 것에 대해 배임죄를 적용할 수 없다는 대법원 전원합의체 판결이 나왔다.
전합(주심 안철상 대법관)은 18일 특정경제범죄가중처벌등에관한법률 위반(배임) 등 혐의로 기소된 A 씨의 상고심에서 징역 2년6개월을 선고한 원심을 깨고 사건을 서울고법으로 돌려보냈다.
A 씨는 2016년 6월 B 씨에게 18억 원을 빌리면서 담보로 아파트에 4순위 근저당권을 설정해주기로 약정했다. 그러나 2016년 12월 해당 아파트에 제3자인 B사 명의로 채권최고액 12억 원인 4순위 근저당권을 설정해준 혐의로 기소됐다.
재판에서는 채무담보로 부동산에 관해 저당권설정계약을 체결한 채무자가 배임죄에서 말하는 ‘타인의 사무를 처리하는 자’에 해당하는지가 쟁점이 됐다.
1·2심은 모두 A 씨에게 배임죄를 적용할 수 있다고 판단했다. 다만 1심은 A 씨가 취득한 재산상 이익을 4억7500만 원으로 보고 형법상 배임죄로 징역 1년6개월, 2심은 재산상 이익을 12억 원으로 판단해 특경법상 배임죄로 징역 2년6개월을 선고했다.
그러나 전합은 “채무자가 저당권설정의무를 위반해 담보 부동산을 제3자에게 처분했다고 하더라도 배임죄가 성립될 수 없다”며 사건을 다시 심리하도록 했다.
재판부는 “채무자의 저당권설정의무는 계약에 따라 부담하게 된 ‘자신’의 의무이고, 이를 이행하는 것은 채무자 ‘자신’의 사무에 해당할 뿐”이라며 “채무자를 채권자에 대한 관계에서 ‘타인의 사무를 처리하는 자’라고 할 수 없다고 판단했다.
전합은 이와 다르게 판단해 배임죄를 인정한 종래 대법원 판례를 모두 변경했다.
대법원 관계자는 “타인의 사무에 관해 종래의 판결을 변경함으로써 형벌 법규의 엄격 해석의 원칙을 재확인하고 사법의 영역에 대한 국가 형벌권의 과도한 개입으로 인한 사적 자치의 침해를 방지한다는 데 판결의 의의가 있다”고 설명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