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거래소가 상장사에 파산신청이 있을 때, 기계적으로 주식 거래를 정지시키는 규정이 무효라는 법원 결정이 나왔다. 거래소가 적극적으로 파산 가능성에 대해 심리ㆍ결정해야 한다는 취지다.
22일 금융투자업계에 따르면 코스닥 상장사 제이웨이는 지난 18일 남부지방법원에 한국거래소를 상대로 제기한 주권매매재개 가처분 신청에서 거래재개 인용 결정을 받았다. 제이웨이는 전 임원이 자사에 대해 반복적으로 파산신청을 함에 따라 주식거래가 정지됐다.
주목할 점은 법원이 거래소 규정을 판단한 부분이다. 현행 규정상 특정 상장사에 파산신청이 확인될 경우 해당 종목을 관리종목으로 지정하고, 해당 사유가 해소될 때까지 주식 거래가 정지된다. 예외적으로 파산 신청자의 채권액이 상장사 자기자본의 10% 미만이거나 20억 원 미만이면 매매를 해제할 수 있도록 내규를 정하고 있다.
그러나 법원은 해당 규정이 무효라고 봤다. 일방적이고 계속되는 파산 신청으로 상장사의 주식이 공정한 가격 형성과 거래 안정성을 저해하는 결과를 초래할 수 있다는 이유에서다.
법원은 거래소가 기계적, 형식적 운용에서 벗어나 △상장법인 측의 소명 △제출 자료 △거래소에 축적된 그동안의 자료 등을 통해 실제 채권의 존재 여부에서부터 파산신청의 권리 남용 해당 여부 등에 이르기까지의 제반 사정을 실질적으로 살펴야 한다고 봤다.
이를 통해 관리종목 지정 제외나 매매거래 정지 해제 여부를 적극적으로 심리, 결정하는 것이 비례의 원칙과 형평의 원칙에 따른 정의 관념에 부합하는 조치라는 설명이다.
법원은 해당 소송에서 “이는 비례의 원칙이나 형평의 원칙에 현저히 어긋남으로써 정의관념에 반하거나 다른 법률이 보장하는 상장법인의 권리를 지나치게 제약한다”며 “상장법인에 부당하게 불리하고 신의성실의 원칙에 반해 공정을 잃은 것으로서 무효라고 보는 것이 타당하다”고 판시했다.
반면, 법원의 판단에 대해 거래소는 현실적 제약이 있다는 입장이다. 법원의 결정은 이해하지만, 거래소가 채권 여부를 판단하거나 파산 여부를 예단할 수 없다는 이야기다. 제이웨이 사례의 경우, 법원이 파산 신청자의 채권이 없다는 점을 명확히 확인했지만, 해당 판단이 없었다면 거래소 독단으로 거래 재개를 결정하기가 쉽지 않다는 취지다.
또, 파산 선고 이후 거래정지를 해도 늦지 않은 것으로 보인다는 법원에 판단에도 이의를 제기했다. 파산이 신청된 회사의 주권을 주식 시장에서 거래되도록 두는 것이 투자자 보호 관점에서 맞느냐는 의문이다.
거래소 관계자는 “해당 결정에 대해 내규를 규정으로 정례화하는 등의 조치를 논의하고 있다”며 “다만, 현실적으로 파산 신청을 거래소에서 판단하는 것은 어렵다. 파산 신청 사례도 많지 않다”고 말했다.
박경수 법무법인 광명 변호사는 “본안 소송 결과를 지켜봐야겠지만, 주목할 만한 결정”이라며 “가처분 결정이기 때문에 유의미한 판례라고 부르기에는 부족하지만, 기존 기계적인 판단을 내렸던 거래소의 규정에 대한 새로운 판단이기 때문에 의미는 있다”고 설명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