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면서 거짓말을 한 번도 하지 않은 사람이 있을까? 순진과 정직함의 대명사인 어린아이들도 곧이곧대로 하는 말이 항상 자신에게 유리한 건 아니란 걸 깨닫는 순간 천연덕스레 거짓말을 한다. 사람들은 살면서 고의든 아니든 크고 작은 거짓말을 하는데, 어쩌면 그 이유가 우리의 코는 피노키오와는 달리 거짓말을 해도 자라는 게 아니어서일 수도 있다. 하지만 마음에는 거짓말의 흔적이 남는다. 지난해 10월 미국의 실험심리학회지에 실린 한 연구 결과에 따르면 거짓말을 자주할수록 다른 사람의 감정을 읽는 능력이 줄어든다고 한다. 공감 능력의 감소라고도 할 수 있다.
미시간 대학의 줄리아 리(Julia Lee) 교수 연구팀은 2500명 이상의 사람들을 대상으로 여덟 가지의 심리 실험을 실시해 거짓말이 사회적 행동에 미치는 영향을 조사했다. 실험에 참가한 사람들은 눈가를 중심으로 찍은 배우 사진을 보고 그 사람의 감정을 추측하는 과제를 받았다. 또한 과제 수행에 앞서 설문조사, 돈 벌기 게임 등을 통해 피실험자들의 거짓말 빈도에 대한 데이터도 수집했다. 종합된 실험 결과 분석에 의하면 거짓말을 자주하는 사람일수록 타인에 대한 심리적 감수성이 떨어지는 걸로 나타났는데, 이에 대해 연구팀은 거짓말이 자신을 주변과 멀어지게 하려는 심리를 유발시키기 때문에 발생한 현상이라고 분석했다. 다시 말해 사회 구성원으로서의 역할을 무시함으로써 자신의 행위를 정당화한다는 의미다.
어떤 거짓말은 개인을 넘어 일정 무리에까지 영향을 미치기도 하고, 더 나아가 사회 전반을 뒤흔드는 불상사를 일으키기도 한다. 거짓말이 ‘팩트’와 무관하게 ‘움직일 수 없는 진실’로 자리 잡는 현상은 왜 발생할까? 심리학자들은 이를 ‘반복효과’에 기인한 것으로 본다. 사실 반복효과는 주변에서 흔히 경험할 수 있는 평범한 현상이다. 예를 들어 첫 만남에선 별로라고 생각했던 이성이 자꾸 만나다 보니 친숙해지고 좋아지는 것도, 어떤 물건을 살 때 광고를 통해 그 이름을 익숙하게 알고 있는 상품을 우선 선택하는 행위도 다 반복효과로 설명할 수 있다.
사람이나 물건뿐 아니라 정보도 한두 번 접하고 들어본 것이라면 사람들은 그걸 올바른 정보로 간주하려 한다. 미국 밴더빌트(Vanderbilt) 대학의 리자 파지오(Lisa Fazio) 교수 연구팀이 최근 발표한 연구 결과에 따르면 이 단순노출의 효과(심리학에서는 반복효과를 단순노출의 원리라고도 한다)는 개개인의 지적 능력이나 정보와 연관된 사전 지식의 유무와 무관하다. 쉽게 말해 ‘배울 만큼 배운 사람도 틀린 말을 여러 번 듣다 보면 그걸 맞는 말로 여기게 된다’는 거다. 연구팀은 5세와 10세 아이 50명, 그리고 32명의 성인으로 구성된 실험 참가자에게 일련의 정보를 제공했는데, 정보에 따라 내용이 맞는 것도 있고 그렇지 않은 것도 있었다. 또한 연령대에 따라선 처음 듣는 내용일 수 있고 혹은 이미 잘 아는 정보일 수도 있었다. 피실험자들의 과제는 이들 정보를 두 번 반복해서 듣고 각 회마다 정보의 내용이 참인지 아닌지에 말하는 것이다. 이때 같은 내용을 단순 반복해 듣는 게 아니라 처음에는 정보의 반을, 다음에는 앞서 접한 내용과 함께 일반적으로 잘 알려지지 않은 내용이 추가된 정보를 듣는다.
실험 결과 분석에 따르면 아이 그룹과 성인 그룹 모두가 거의 같은 비율로 정보의 참과 거짓을 맞혔다. 또한 나이와 상관없이 반복된 정보에 대해 진실로 여기는 경향이 높았다. 심리학자들은 다음과 같이 설명했다. “친숙한 정보는 다루기가 쉽기 때문에 사람들은 무의식적으로 이를 진실된 것으로 해석하려고 한다.” 결국 설사 거짓말이라도 반복해서 들으면 사실이 아닐까라는 생각이 들면서 자기도 모르는 사이 진실로 받아들이게 된다는 의미다.
가짜뉴스가 무차별적으로 쏟아지고 확대 재생산되는 요즘, 다시 한번 나 자신을 돌아보게 하는 연구 결과다. 아돌프 히틀러의 선전 기본원칙 중 하나가 “충분히 자주 반복하면 조만간 믿게 된다”였다고 하니 더더욱 그러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