트럼프 대통령은 바이든을 공격하기 위해 바이든 아들의 ‘중국’ 커넥션을 지적했고, 바이든은 트럼프의 코로나19 초기 대응 실패 책임을 묻기 위해 트럼프의 ‘시진핑’ 커넥션과 ‘중국’을 활용했다. 바이든은 트럼프의 대중정책이 미국의 대중 무역적자 해소에 전혀 도움이 되지 못했다고 공격했고, 트럼프는 민주당 정권이었다면 중국이 미국을 더욱 등쳐먹었을 것이라고 서로 주고받았다.
결국 트럼프가 재선에 성공하든, 바이든이 대통령이 되든 미국의 강경한 대중정책이 계속될 것이라는 것을 다시 한번 확인하는 자리였다. 그렇다면 미국은 왜 중국에 대해 이렇게까지 하나같이 강경할 수밖에 없는 것일까.
근본 원인은 첨단기술의 성격 변화에 있다. 과거 미소(美蘇) 냉전기 첨단기술이라고 할 수 있는 핵폭탄과 미사일 개발은 오로지 체제 생존 및 군사 패권과 관련되었다. 북한의 핵무기 개발을 보면 핵무기 기술을 개발한다고 해서 경제적 이득이 생기는 것이 아님을 알 수 있다. 그러나 현재 세계가 주목하고 있는 5세대 이동통신(5G), 인공지능(AI), 양자컴퓨팅, 로봇공학, 첨단반도체와 같은 4차 산업혁명을 대표하는 첨단기술들의 특징은 민군겸용(民軍兼用, dual-use)이라는 데 있다. 다시 말해서 이들 첨단기술을 확보하고 남들보다 앞서나갈 수 있다면 군사 패권뿐만 아니라 경제 패권에도 한층 가까워진다. 따라서 미국은 중국의 첨단기술 분야 성장에 경계심을 갖고 있는 것이다.
최근 필자는 한 대학원 강의에서 과학기술 발전 측면에서 중국의 국가 주도 전략과 미국의 민간 주도 전략 중 어느 것이 궁극적으로 우위에 있냐는 흥미로운 질문을 받았다. 필자의 연구에 의하면 중국의 기술혁신 생산성은 2015년부터 미국을 추월했다. 그러나 동시에 미국은 세계 최대 지적재산권 흑자 국가이며 중국의 지적재산권 적자는 오히려 매년 확대되고 있다. 이 두 가지 사실에서 도출할 수 있는 합리적인 답변은 중국의 국가주도형 과학기술 발전 전략은 응용기술을 생산하는 데는 상당히 효과적이지만, 원천기술을 확보하는 데는 효과적이지 않아 보인다는 것이다.
중국은 지금까지 놀라울 정도로 빠르게 성장해 왔다. 그러나 그 성장은 외국의 원천기술·소재·부품·장비에 의존한 발전이었다. 중국의 ‘중국제조 2025’, ‘천인계획(千人計劃)’ 등은 중국의 강점을 보여주는 것이 아니다. 중국 스스로 핵심기술에 대한 외국의존도가 높다는 약점을 인정하고 그 약점을 보완하기 위한 국가 전략이다. 이를 알고 있는 미국을 포함한 서구는 결국 약점 공략에 나섰다.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 속에서 중국의 싹쓸이 기업 구매를 경험했던 유럽 국가들은 2020년 코로나19 사태가 일어나자 외국인 투자심사부터 강화했다. 미국은 투자심사 강화, 수입 규제, 수출 통제, 중국인 유학생 규제 강화를 통해 중국의 원천기술 확보를 차단하고 있다.
중국은 중국 특색을 인정하라고 주장하지만 서구는 중국의 불공정한 관행을 통한 기술 습득과 정부 주도의 공격적 해외기업 인수합병(M&A)을 통한 기술 습득을 용납할 수 없다는 입장이다. 사회주의 철학에 기반한 중국은 국영기업과 보조금 정책을 양보할 수 없는 자국의 핵심 이익으로 본다. 그러나 문제는 이러한 가치를 공유할 수 있는 친구가 없다는 것이다. 마르크스-레닌주의에 입각한 사회주의 국가는 현재 전 세계에 중국, 라오스, 베트남, 쿠바 등 네 국가밖에 없다. 다시 말하면 중국과 교역하고 있는 대다수의 국가는 중국과 근본적으로 가치를 공유하지 않는다. 모두가 참여하는 게임에 룰(rule)이 두 개일 수는 없다.
이러한 상황을 절감했는지 중국은 외부 리스크에 대한 취약성을 개선하기 위해 올해 6월 ‘쌍순환(雙循環)’ 발전 전략을 발표하고, 중국 내 자체 산업사슬(self-reliant supply chain) 구축을 통한 자립자강(自立自强) 전략을 펴기 시작했다. 9월에는 민영경제 통일전선 구축을 통한 공산당의 민영기업 통제 강화, 우리나라 농협에 해당하는 공소합작사 개혁 등 세부 실행 계획도 하나씩 나오고 있다. 중국의 강한 상황 타개 의지는 읽을 수 있지만 안타깝게도 2049년까지 세계를 선도하는 국가가 되겠다는 중국몽(中國夢) 달성에 역행하는 소탐대실 전략으로 보인다.
한 가지 확실한 점은 우리가 미중 갈등의 시대에 살고 있다는 것이다. 우리는 단기적인 이벤트에 ‘시대(era)’라는 표현을 사용하지 않는다. 새로운 ‘시대’는 패러다임의 변화를 내포한다. 패러다임의 변화를 엿볼 수 있다는 점에서 남은 2·3차 미 대선 TV토론도 기대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