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거운 짐을 잔뜩 들고 지하철 개찰구를 통과할 때, 휴대폰이나 카드를 갖다 대지 않아도 문이 자동으로 열린다. 급한 작업을 하려고 컴퓨터를 켜면, 사용자가 가까이 왔다는 것을 인식해 곧바로 로그인이 완료된다.
상상 속 신기술이 아니다. 기기 간 거리 정보를 활용한 기술인 UWB(초광대역)를 활용하면 충분히 실현될 수 있는 서비스들이다. ㎝ 단위까지 거리를 정밀하게 측정할 수 있는 UWB 기술의 장점이 빛을 발할 수 있는 분야도 점점 늘어나는 추세다.
삼성전자는 UWB가 와이파이와 블루투스 기술처럼 무선 통신 기술의 차세대 ‘게임 체인저’가 될 것이라고 보고 연구에 박차를 가하고 있다.
UWB 기술을 연구 중인 삼성리서치 차세대통신연구센터 표준연구팀 전해영 연구원은 “UWB의 정밀한 거리·위치 측정 기능은 물류센터, 공장자동화, 쇼핑센터, 공공시설 등 다양한 산업 영역에서 새로운 패러다임을 가져올 수 있을 것”이라고 강조했다.
초광대역(UWB) 기술은 수십 년 전 알려졌지만 최근 다시 주목받게 된 특이한 경우다. 데이터 전송 용도로는 한계가 있다는 이유로 많이 쓰이지 못했지만, 최근 거리측정 성능을 필요로 하는 서비스가 속속들이 생겨나면서 장점이 부각되기 시작했다.
그러나 ‘과거의 기술’을 다시 현재로 불러오는 과정이 쉽지만은 않았다. UWB는 기기 간 연결이 중점이 되는 기술이기 때문에 연구개발 단계에서 글로벌 표준화 과정이 필수적이었지만, 많은 업체가 UWB 기술의 실현 가능성에 대해 의문을 품고 있었기 때문이다. 지속적인 설득만이 답이었다.
전 연구원은 “전 세계 여러 기업에 UWB에 대한 삼성전자의 비전을 공유하고, 구체적인 플랜을 제시했다”며 ”작년 1월 세계 최대 정보통신 박람회인 미국 라스베이거스 CES 전시장의 작은 회의실에서 디바이스, 칩, 서비스 등 각 분야 업체의 책임자들이 모여 표준단체 설립에 합의했고, 그렇게 ‘FiRa 컨소시엄’이 탄생했다”고 회상했다. 글로벌 UWB 표준 단체 구심점에 삼성전자가 서게 된 계기다.
3개 업체와 함께 첫발을 내디딘 컨소시엄은 현재 칩셋ㆍ도어락ㆍ스마트폰ㆍ소프트웨어 솔루션 분야 글로벌 업체 50여 곳이 참여할 정도로 몸집을 불렸다. 결제 서비스, 위치 기반 서비스, IoT(사물인터넷) 기기 제어 서비스까지 UWB 기술이 폭넓게 확장할 수 있는 기반이 마련된 셈이다.
전해영 연구원은 “지금도 꾸준히 새로운 업체들의 참여가 늘고 있는 만큼, UWB 생태계를 탄탄하게 구축해 널리 활용될 수 있도록 발전시켜 나가겠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