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수첩] ‘자만추’와 사모펀드

입력 2020-11-19 05: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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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경연 금융부 기자

요즘 대세는 ‘자만추’다. 자연스러운 만남을 추구하는 사람 혹은 성향을 줄여 부르는 말이다. 인위적인 소개팅이 싫다는 사람들이 택하는 길이다. 이런 대세의 흐름 때문인지 주변에 부쩍 직장인 취미 앱에 가입하는 친구들이 많아졌다. 가장 인기 있는 앱 투 톱은 ‘소모임’과 ‘2교시’다(광고 절대 아님). 소모임은 말 그대로 작은 모임, 2교시는 1교시인 직장이 끝나면 듣는 수업이란 뜻이다.

최근 2교시 앱의 독서모임에 가입한 친구에게 참석 후기를 들었다. 어김없이 첫날에는 자기소개가 이어졌다. 대학교 신입생 환영회처럼 어색한 분위기는 똑같지만 달라진 점은 참가비 수준과 밝혀야 하는 내 사회적 위치다. 본인 차례가 오면 현재 다니는 정확한 직장명은 물론 부서와 직급까지 말해야 하는데, 앞의 사람들이 모두 그리하니 차례가 돌아오면 자연스럽게 밝히게 된다는 것.

얘기를 듣다보니 이게 자만추인가 싶었다. 오히려 소개팅보다 더하면 더했지 덜하진 않은 수준이었다. 직장명만 물어봐도 자칫 실례가 될 수 있는 소개팅에 반해 여기는 본인이 알아서 직급까지 말해주니 웬만한 결혼정보업체보다 효율적인 선자리가 아닐 수 없다. 모임에 다녀온 친구는 오히려 이를 장점으로 생각했다. 이렇게까지 정보를 밝히니 모임에 이상한 사람이 참석하거나 비상식적인 행동을 하는 사람이 나타날 가능성이 희박하다나.

최근 환매 유예된 영국 신재생에너지 펀드를 취재하다가 운용사들이 작성한 보고서를 보고 실소가 터졌다. 단순 취미 앱에 가입해도 다 밝혀야 하는 세상인데 수천억 원을 투자해 발전소를 짓는다는 설명 아래에는 그곳이 영국인지 강원도 논밭인지 모를 허허벌판 사진 한 장만이 덩그러니 놓여 있었다. 구체적인 주소는커녕 현지 담당자 연락처조차 명시돼 있지 않았다. 라임과 옵티머스의 부실한 실사보고서를 보고 있는 듯한 기시감이 들었다.

동호회 앱이 자만추인지 소개팅인지 의견이 분분하다. 누가 어떤 목적으로 왜 가입했는지는 본인만 알 수 있다. 확실한 것은 다 밝혀야 부작용이 없다는 것. 다 밝혀서 비상식적인 참가자는 모임에 끼지 못하게 해야 한다는 것. 자만추와 사모펀드의 공통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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