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달 애플리케이션(앱) 배달의민족을 만든 김봉진 우아한형제들 의장이 재산 절반 이상을 사회에 환원한다. 김 의장이 보유한 재산이 1조 원이 넘을 것으로 예상하는 데다 기한도 ‘죽기 전까지’라고 밝힌 만큼 기부 규모는 5000억 원을 넘길 것으로 보인다.
배달의민족(배민) 운영사 우아한형제들은 18일 ‘더 기빙 플레지’가 김 의장과 아내 설보미 씨의 서약서를 공개했다고 밝혔다.
김 의장은 서약서를 통해 “저와 저의 아내는 죽기 전까지 재산의 절반 이상을 사회에 환원한다”며 “이 기부선언문은 우리의 자식들에게 주는 그 어떤 것들보다 최고의 유산이 될 것을 확신한다”고 말했다.
이로써 김 의장은 빌 게이츠 마이크로소프트(MS) 회장, 워런 버핏 버크셔해서웨이 회장 등과 어깨를 나란히 하게 됐다.
더 기빙 플레지는 빌 게이츠 회장과 워런 버핏 회장이 재산 사회환원 약속을 하면서 시작된 자발적 기부운동이다. 마크 저커버그(페이스북 창업자), 일론 머스크(테슬라 CEO), 마이클 블룸버그(전 뉴욕 시장) 등 24개국 218명이 이에 동참했다. 김 의장은 전 세계에서 219번째, 아시아에서는 7번째로 이름을 올렸다.
김 의장은 최소 5500억 원 규모의 기부금을 내놓을 것으로 보인다. 김 의장은 배달의민족을 독일 딜리버리히어로(DH)에 매각하면서 받은 주식 가치 등을 포함해 1조 원이 넘는 재산을 소유한 것으로 알려졌다. 또한, 더 기빙 플레지 회원이 되려면 자산도 10억 달러(1조1065억 원가량) 이상이어야 한다.
기빙플레지 회원들은 본인의 관심사, 해결하고 싶은 이슈에 따라 향후 국내외의 적합한 자선단체, 비영리단체를 찾아 자유롭게 기부하게 된다.
이와 관련해 김 의장은 “교육 불평등에 관한 문제 해결, 문화 예술에 대한 지원, 자선단체들이 더욱 그 일을 잘할 수 있도록 돕는 조직을 만드는 것을 차근차근 구상하고 있다”고 말했다.
김봉진 의장은 “대한민국에서 아주 작은 섬에서 태어나 고등학교 때는 손님들이 쓰던 식당 방에서 잠을 잘 정도로 넉넉하지 못했던 가정형편에, 어렵게 예술대학을 나온 제가 이만큼 이룬 것은 신의 축복과 운이 좋았다는 것으로 밖에는 설명하기가 어렵다”며 “존 롤스의 말처럼 '최소 수혜자 최우선 배려의 원칙'에 따라 그 부를 나눌 때 그 가치는 더욱 빛난다”고 기부 이유를 설명했다.
그의 말처럼 김 의장은 수도전기공고와 서울예술대학 실내디자인학과를 졸업한 ‘예대생’이다.
서울로 상경해 작은 식당을 운영하던 부모님과 함께 넉넉지만은 않은 생활을 보내면서도 예술가의 꿈을 놓지 않은 것.
디자이너로 일하던 그는 2010년 우아한형제들을 창업했다. 길마다 어지럽게 붙어 있는 음식점 전단을 모바일로 옮겨보겠단 포부였다. 한 벤처투자 업계 관계자는 본엔젤스가 초기 투자를 집행할 당시를 기억하며 “김 의장을 보면서 ‘이 팀(우아한형제들)은 뭐라도 하겠다’는 생각을 했다”고 말하기도 했다.
배달 앱 시장이 본격적으로 성장한 이후 배민은 업계 1위로 올라섰다. 몸집을 불린 우아한형제들은 유니콘(기업가치 1조 원 이상) 기업이 됐다. 2018년 힐하우스캐피탈, 세콰이어캐피탈, 싱가포르투자청(GIC)으로부터 3611억 원 규모의 투자를 받으면서다.
이어 성공적인 엑시트(투자금 회수)도 진행됐다. 2019년 12월 독일 DH는 우아한형제들의 국내외 투자자 지분 87%를 40억 달러(4조7500억 원가량)에 인수하겠다고 밝혔다. 지난해 말 DH가 공정거래위원회의 조건부 승인 명령을 받아들이면서 합병은 올해 1분기 내로 마무리될 전망이다. 김 의장은 우아한형제들과 DH의 싱가포르 합작법인에서 아시아 총괄 본부장을 맡는다.
김 의장의 기부는 이번이 처음이 아니다. 그는 2017년 3년 안에 100억 원을 사회에 환원하겠다고 약속한 바 있다. 이어 사랑의열매, 초록우산어린이재단 등 재단ㆍ협회와 밥퍼나눔운동본부, 서울예대 등 비정부기구(NGO)와 학교, 코리아스타트업포럼 등 업계에 100억3100만 원을 기부했다.
김 의장은 “100억 원 기부를 약속하고 이를 지킨 것은 지금까지 인생 최고의 결정이었다”며 “이제 더 큰 환원을 결정하려 한다”고 했다. 또한, 기부 문화를 저해하는 인식과 제도 문제를 개선하고 이를 확산하는 일도 꾸준히 하겠다고 약속했다.
이번 기부는 직원들에게도 알리지 않고 비밀리에 진행됐다.
배민 관계자는 “오전에 보도를 보고 (기부하시는 것을) 알았다”며 “사회 환원 방식을 고민하신단 것은 알고 있었지만 기빙플레지 서약을 하실 줄은 몰랐다”고 말했다.
스타트업 업계는 김 의장의 결단에 ‘리스펙(존경)’한단 반응이다. 한 스타트업 대표는 “기사를 읽고 부럽단 생각이 들었다”며 “나도 꼭 (김 의장의) 뒤를 따르고 싶다”고 말했다.
최성진 코리아스타트업포럼 대표는 “업계는 김 의장의 결정을 ‘리스펙’하고 있다”며 “한 사람의 경영자로서, 또 기업의 사회적 책임을 다하는 측면에서 대단한 일”이라고 설명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