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문
사과를 언급할 때 주로 사용되는 문구 중에는 이런 게 있다. “역사상 유명한 사과가 셋이다…”로 시작하는 이 인용구는 ‘이브의 사과’, ‘뉴턴의 사과’ 그리고 ‘세잔의 사과’를 꼽는다. 에덴동산에서 걱정 없이 살아가도록 창조된 인류를 치열한 삶의 경쟁지로 내몬 ‘이브의 사과’나, 만유인력이란 개념을 도출하게 만든 ‘뉴턴의 사과’는 대부분 잘아는 개념들이다. 그런데 ‘세잔의 사과’? 별로 잘 그린 것 같지도 않고 원근법도 철저하게 지켜지지 않은 세잔의 사과가 왜 중요하다는 거지?
#본문
서울옥션 이승환 팀장
일반적으로 이렇게 생각할 수 있다. 하지만 세잔의 사과, 즉 그의 작품은 미술이 단지 실제를 모방하는 차원을 넘어 창조자의 주관과 사상을 담게 만든 계기였다.
한 화면에 다양한 각도에서 관찰하여 묘사된 사과는 사과의 외면을 표현하는 데 그치지 않고 대상의 본질을 묘사하고 있다.
현대미술에 있어서 가장 중요한 요소 중 하나인 ‘새로운 시각’을 그는 열어 보였던 것이다. 세잔이 현대미술의 아버지로 여겨지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그리고 역사상 유명한 세 사과 중 하나가 바로 그가 그린 사과로 여겨지고 있다.
실제로 최근 국내 미술시장의 호황기에 가장 인기를 얻은 작가들을 꼽으라고 하면 작가 윤병락은 언제나 포함되고 있다.
하지만 그 이유가 단순히 ‘잘 그린’ 그림이어서일까? 사과를 대상으로 작업을 하는 작가들은 그 말고도 더 많은데 말이다.
우연히 술자리에서 출생 연월일이 같다는 사실을 알게 되어 작가와 필자는 친한 사이가 되었다. 작가와 기획자의 관계를 넘어 일상사에 대한 이야기도 주고 받는 가운데, 작품에 대해서도 가끔씩 속내를 비추기도 한다.
연신내의 한 맥주집에서 나는 질문을 던졌다. 왜 사과를 그리냐고. 돌아온 그의 답은 예상외였다. 그리고 간단했다. “내가 사과를 그리는 것은 재현의 문제가 아니다. 컴포지션(구성)이 내 작업의 중점이다.”
그의 작품을 다시 보게 된 것은 두말할 나위가 없다. 세잔의 사과에 대해 프랑스 화가 모리스 드니는 “사과가 보는 이의 마음에 말을 건넨다”라고 말했다.
미술에 대해 지식과 정보가 풍부한 이들을 제외하고는 사실 세잔의 사과가 왜 중요한 지 알기 어렵다. 하지만 이처럼 의미가 부여되면 그 이후에 보게 되는 작품은 이전과 같지 않다.
윤병락의 사과 역시 그렇다. 세잔의 사과가 그러했듯, 그는 표현할 수 없는 것을 표현하고 싶었는지도 모른다.
사족을 달자면, 최근 들어서는 역사상 유명한 사과가 넷이 되었다고 한다. 마지막 사과는 바로 ‘스티브 잡스의 사과’라고 한다.
<작품1> 가을향기(윤병락 1968~ ), 장지에 유채, 162.5x58.8cm, 2005
<작품2> 사과(윤병락1968~ ), 한지에 유채, 57.4x102.7cm, 200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