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노기술의 선구자로 풀러렌(fullerene)을 발견해 1996년 노벨화학상을 수상한 미국 라이스 대학의 리처드 스몰리 교수는 한때 가벼운 탄소나노튜브를 엮어서 동화 ‘잭과 콩나무’에 나오는 콩나물 줄기처럼 하늘에 늘어트리면 우주 엘리베이터를 만들 수 있다고 말한 적이 있다. 1895년 ‘로켓의 아버지’로 불리는 옛 소련의 과학자 콘스탄틴 치올코프스키에 의해 처음 제안된 우주 엘리베이터는 지구가 물질을 지구상으로 끌어들이는 중력과 위성이 바깥으로 달아나려는 원심력이 균형을 이루는 고도 3만6000km까지 엘리베이터로 연결하는 것이다. 이를 위해서는 가벼우면서도 강철보다 100배는 튼튼해 우주의 혹독한 환경을 버텨낼 수 있는 소재가 필요하다. 최근 우주로켓을 마구(?) 쏘아 올리는 일론 머스크조차도 탄소나노튜브를 케이블로 만드는 일은 엄두도 내지 못하고 있다. 왜냐하면, 탄소나노튜브를 매우 길게 합성해야 케이블로 만들었을 때 이론적인 강도가 나오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게 가능해지면 위성 발사보다 운송비가 100분의 1로 줄어들기 때문에 우주시대 꿈의 기술로 여겨지고 있다. 2005년에 세상을 떠난 스몰리 교수가 더 오랫동안 탄소나노튜브를 연구했다면 머스크와 같은 괴짜 연구개발자와 꿈의 기술을 논하고 있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을 해보게 된다. 이처럼 누구도 가보지 않은 길을 과연 우리나라 과학자들은 갈 수 있을까? 필자도 정부출연연구소에서 연구를 하고 있지만 당장의 성과에 매여 있다 보니 이러한 상상은 언감생심(焉敢生心)이다.
우주 엘리베이터를 구현하기 전에 해야 할 일이 있다. 바로 무거운 구리선을 대체하는 경량 와이어 제조기술 개발이다. 자동차, 비행기, 우주선에 사용되는 전선을 모두 가벼운 탄소나노튜브로 대체하면 어떨까? 상상만 해도 아~가볍겠구나 하는 생각을 하게 된다. 구리는 비중이 9g/cc인 반면 탄소나노튜브는 속이 비어있기 때문에 비중이 1g/cc 이하가 된다. 탄소나노튜브 한 가닥의 전기전도도는 구리보다 100배 더 높지만 구리선과 같이 수백 ㎛ 지름의 전선을 만들기 위해서는 탄소나노튜브가 집합체를 이루어야 한다. 이때 탄소나노튜브를 전자가 타고 넘어가야 전기가 흐르기 때문에 저항손실이 일어나게 된다. 앞서 언급한 우주 엘리베이터에서와 마찬가지로 이러한 수십 m 길이의 구리권선을 탄소나노튜브만으로 대체하기 위해서도 결정성이 좋은 탄소나노튜브를 수십 cm 이상으로 합성할 수 있어야 가능하다. 때문에 탄소나노튜브로 구리선을 대체하기 위해서는 벌크 상태에서 전기전도도가 우수한 구리의 힘을 조금 빌려야 한다. 이를 위한 탄소나노튜브와 구리의 나노복합화가 필요하다. 아직 전 세계적으로 기초 수준의 연구개발이 이루어지고 있지만, 4차 산업혁명 시대에 드론, 플라잉카 등 날아다니는 수송체에 대한 수요가 급증할 것이기 때문에 우주 엘리베이터는 차치하더라도 가벼운 전선을 만드는 일은 탄소나노튜브의 르네상스를 기대하는 본인으로서는 가까운 미래사회에 꿈꿀 수 있는 좋은 연구주제임에 틀림없다.
미래 전기차나 자율주행차에 가벼운 탄소나노튜브 전선이 사용되고 플라잉카에 사용되는 모터에 무거운 구리선 대신 탄소나노튜브 권선이 사용되어 배터리 수명을 늘릴 수 있는 혁신적인 기술이 개발되길 기대해본다. 이를 위해서는 일본의 수출 규제로 촉발된 소부장 이슈 해결과 같이 당장의 결과가 필요한 연구개발도 있지만, 정부의 묻지마 지원도 중요하다. 이러한 가벼운 전선을 만드는 기술은 우리가 사용하는 각종 전기기기의 에너지 효율을 높여 주기 때문에 정부가 추진하는 2050 탄소중립 추진전략과도 그 맥을 같이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