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스크칼럼] 반칙을 이대로 둘 것인가

입력 2021-03-10 06:00 수정 2021-03-10 06: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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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문호 자본시장부장

한국토지주택공사(LH) 직원들의 3기 신도시 땅 투기 의혹을 둘러싼 파문이 눈덩이처럼 커지고 있다. LH에 만연한 도덕적 해이는 도를 넘었다. 토지보상 담당 책임자 등 5명의 임직원은 2019년 6월 시흥의 토지 6789㎡를 25억여 원에 사들인 뒤 지분을 쪼개 보유했다. 직원 6명은 인근 땅 5025㎡를 22억여 원에 사들이자마자 대토보상 기준인 1000㎡ 이상 네 필지로 나눴다. LH에서 오랫동안 토지보상 업무를 한 간부 K 씨는 이름도 생소한 왕버드나무까지 잔뜩 심었다고 한다. 현장 사진을 본 조경 전문가는 한결같이 “보상 관련 최고수의 솜씨”라며 혀를 내두른다.

부동산에 대한 욕심은 이들뿐이 아니다. 3년 8개월 임기를 마치고 퇴임한 강경화 전 외교부 장관이나 김조원 전 청와대 민정수석은 “1주택을 제외하고 나머지는 처분하라”는 노영민 전 대통령 비서실장의 권고를 따르지 않고 퇴직했다. 힘 있는 자들이 이 정도인데, 주변에 이런 일이 얼마나 허다할지 짐작조차 어렵다.

왜 이런 일이 벌어질까? “정권은 유한하지만, 부동산은 영원하다”는 말처럼 우리 사회에 부동산 불패신화가 편만해 있으며, 서민을 ‘벼락거지’로 만들어 버린 잘못된 정책과 불신, 정치권의 포퓰리즘 때문이겠다. 이는 집을 거주의 개념이 아닌 돈을 좇는 ‘머니게임’으로 변질시켰다.

기회의 평등을 막는 반칙은 이게 다가 아니다. SBS드라마 ‘펜트하우스2’는 또 다른 반칙의 세계를 적나라하게 그린다. 이야기의 한 축인 교육 전쟁은 “현실과 드라마, 누가 더 막장인가”라는 물음을 우리에게 던진다.

의사, 변호사, 교수, 고급 공무원 그리고 이름만 들어도 알 만한 대기업의 정규직 등 ‘좋은 직업’을 두고 벌이는 경쟁과 SKY 등을 향한 학벌 경쟁은 우리 사회에 중첩·구조화된 지 오래다. 초·중·고교에서부터 이미 높아져 있는 벽을 통과한 부류들이 만들어가는 경쟁일 뿐 ‘아무나’ 낄 수도 없다. 심지어 상위 계층에도 쉬운 일이 아니다. 심심찮게 터지는 금융권 및 공기업 인사 청탁, 학생부 조작 등 스펙 조작 사건이 이를 말해 준다. 이는 자신의 지위를 이용해 경쟁에서 이기고 ‘좋은 삶’을 세습하려는 상층 계급 부모들의 반칙이라고밖에 설명이 안 된다. 조국 전 법무부 장관을 향한 국민의 시선이 따가운 이유이기도 하다.

사회 전반을 덮고 있는 차별의 매트릭스가 깊고 어둡다. 삶 주변에서는 ‘부동산 블루’(치솟는 집값에 따른 우울증), ‘벼락거지’(한순간에 부자가 된 벼락부자의 반대 개념으로, 자신도 모르는 새 자산 격차가 벌어진 사람을 일컫는 말)란 말이 일상용어처럼 쓰인다. ‘과정’이란 개인의 노력으로 바꿀 수 있는 일은 별로 없고, ‘결과’는 처음부터 예상할 수 있기 때문일 게다. 국가가 과정이나 결과에 끼어들려(정책, 경기부양) 하지만, ‘역차별’이라는 비난이 빗발친다.

문재인 정부의 모토인 “기회는 평등하고 과정은 공정하고 결과는 정의로운 나라”는 어디에 있을까? 기회란 무엇을 위한 기회인가? SKY에 갈 기회인가, 철밥통 공무원이 될 기회인가? 아니면 로또 아파트 청약에 당첨이라도 기회인가? 기회의 단계마다 높이 올려 쳐진 문턱을 생각하면 정부가 금과옥조로 여기는 기회의 평등이란 이제 거짓이라고 말할 수밖에 없지 않을까?

대한민국이 ‘죄수의 딜레마’에 빠져든 모양새다. 그런데도 정부는 정책 실패를 인정하거나 기조를 바꾸려 하지 않는다. 이대로 간다면 문재인 정부가 또 다른 ‘적폐’로 남을 게 불 보듯 뻔하다. ‘죄수의 딜레마(Prisoner’s dilemma)’는 서로 믿고 협력하면 모두에게 이익이지만 실행에 옮기지 못해 모두 피해를 보는 상황을 일컫는다.

얼마나 더 추락해야 현실을 인정하고 방향 착오 정책을 수정할 것인지 답답하다. 어떤 나라도 반칙을 청산하지 않고는 경제·정책운용에 성공한 사례가 없다. 지금 우리에게 가장 필요한 것은 썩은 살을 도려내는 일이 아닐까.km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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