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런데 정부는 얼마 전 주택 보유자에게 ‘세금 폭탄’이라는 극약 처방을 내렸다. 공시가격 인상 얘기다. 정부는 올해 아파트 등 공동주택 공시가격을 평균 19.08% 올렸다. 2007년(22.7% 상승) 이후 14년 만에 최대 인상폭이다. 작년(5.98% 상승)과 비교해도 세 배 넘게 올랐다. 세종시가 70.68%나 치솟았고, 서울ㆍ경기ㆍ대전ㆍ부산ㆍ울산 등도 1년 새 20% 안팎으로 뜀박질했다. 가히 ‘역대급’ 인상이라 할 만하다. 집값 급등에다 공시가격 현실화율(시세 반영률) 상향까지 겹친 영향이다. 정부는 올해 공동주택 공시가격을 시세의 70.2%까지 끌어올렸다.
공시가격이 9억 원을 웃돌아 종합부동산세(종부세) 징수 대상에 오른 공동주택(1가구 1주택 기준)도 52만4620채로 작년보다 70%가량 불어나게 됐다. 서울에선 아파트 6채 중 한 채꼴로 종부세를 내야 한다.
종부세는 몇 년 전만 해도 주로 강남권에서 극소수 자산가가 내는 ‘부자세(稅)’로 통했다. 이제는 아니다. 웬만한 중산층도 피할 수 없는 ‘보편세’가 돼 버렸다. 공시가격은 비단 공동주택만 오른 게 아니다. 올해 서울 개별 단독주택도 전년 대비 9.83% 올랐다.
올해는 종부세율 인상도 예정돼 있다. 종합부동산세법에 따르면 6월 이후 3주택 이상(조정대상지역은 2주택 이상) 소유자의 종부세율은 지난해 0.6~3%에서 올해 1.2~6%로 오른다. 1주택자도 종부세율이 0.5~2.7%에서 0.6~3%로 높아진다.
후폭풍이 거세다. “집값은 정부가 올려놓고 (세금) 부담은 우리가 져야 하느냐” 등의 불만이 곳곳에서 터져나오고 있다. 마땅한 수입 없이 집 한 채가 재산의 전부인 은퇴자의 경우 세금 부담에 살던 집을 처분해야 할 상황에 내몰릴 판이다.
집값이 오르면 보유세(재산세+종부세)도 늘어나는 게 맞다. 공시가격과 시세의 괴리를 좁히는 것은 조세 형평성 차원에서 바람직한 일이다. 문제는 상승 폭과 속도다. 아무리 명분이 좋은 정책이라도 정도가 지나치면 탈이 나게 마련이다. 세금을 내기 위해 빚을 얻어야 하거나 살던 집을 팔아야 한다면, 그것은 세금 부과가 아니라 갈취다.
공시가격이 오르면 보유세만 불어나는 게 아니다. 건강보험료도 큰 폭으로 오르고 기초연금 수급 자격에도 문제가 생길 수 있다. 직장건강보험 피부양자였던 은퇴 고령자 2만 명은 보유 주택 공시가격이 9억 원을 넘어서는 바람에 당장 11월부터 매달 평균 12만 원의 건보료를 새로 내야 한다. 마땅한 현금 수입이 없는 이들 처지에선 월 12만 원도 일상이 깨질 수 있는 부담이다. 기초연금 수급자들도 비상이다. 보유 주택 공시가격이 6억5000만 원을 넘으면 월 30만 원의 기초연금을 받을 수 없어서다.
그런데도 정부는 공시가격의 시세 반영 속도를 높이겠다는 입장을 굽히지 않고 있다. 2030년까지 공시가격을 시세의 90%까지 끌어올리겠다는 것이다. 게다가 종부세를 계산할 때 적용되는 공정시장가액비율도 올해 95%에서 내년엔 100%로 오른다. 이러면 집값이 오르지 않거나 떨어져도 보유세가 더 늘어나는 기현상이 발생할 수도 있다.
징벌적 과세는 반드시 시장의 보복을 부른다. 집주인들이 가만히 있을 리 없다. 월세 등 임대료를 올려 세금 부담을 세입자에게 전가할 가능성이 크다.
털을 세게 뽑았다간 거위가 소리를 지르며 달아나듯이 무리한 세금 인상은 거센 조세 저항을 부를 수 있다. 더욱이 주택 공시가격 산정이 명확한 객관적인 기준 없이 주먹구구로 이뤄졌다는 비판까지 받고 있지 않는가.
공시가격 인상 속도는 납세자가 감내하고 신뢰할 수 있는 수준에서 점진적으로 이뤄져야 한다. 세금은 거위 깃털 뽑듯 해야 한다는 콜베르의 경고처럼. 공시가격 산정 때 연간 인상률을 일정 정도 제한하는 제도적 장치가 하루빨리 마련되길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