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트남, 인도네시아 등 신(新)남방 국가들이 전기차 전환에 속도를 내며 완성차 업계에 새로운 기회의 땅으로 주목받고 있다. 이들 정부가 전기차 보급 확대를 위해 제도 정비에 나서고 있고, 현지의 자동차 보급률도 낮은 상태라 국내 업계의 성장 가능성도 크다는 분석이 나온다.
26일 외신과 관련 업계에 따르면 베트남의 첫 번째 고유 자동차 제조사 ‘빈패스트’는 최초의 양산형 전기차 ‘VF31’을 지난달 공개하고 사전계약에 돌입했다. 빈패스트는 ‘베트남의 삼성’으로 불리는 베트남 최대 민간 기업 빈그룹(Vingroup)이 2017년 설립한 회사다.
베트남 정부는 빈패스트의 전기차 출시에 발맞춰 제도 개선과 인프라 확충에 속도를 내고 있다. 총리실은 올해 안에 전기차 구매 보조금 정책을 마련하기로 했고, 베트남에서 생산하지 못하는 전기차용 부품에 대해서는 관세도 철폐했다. 또한, 빈패스트와 함께 공공시설에 전기차 충전기를 확충하는 작업에 돌입했다.
태국 정부도 ‘국가 전기차 정책위원회’를 발족하고 5년 이내에 자국을 아세안 최고의 전기차 허브로 만들겠다는 ‘전기차 로드맵’을 발표했다. 이와 함께 전기차 보급을 확대하기 위해 전기차 구매 시 내야 하는 소비세도 면제하기로 했다.
인접국 라오스 역시 전기차 도입에 관심을 보인다. 라오스 정부는 아시아개발은행(ADB)의 자금을 지원받아 수도 비엔티안의 도심 교통을 현대화하는 프로젝트에 돌입했는데, 전기차 관련 정책도 다수 포함됐다. 전기버스 50대를 도입해 도심 대중교통으로 시범 운영하고, 전기차 등록 관리부터 충전소 설치까지도 일괄 진행할 계획이다.
인도네시아는 경제적 효과를 기대하며 전기차 보급을 추진 중이다. 인도네시아는 전기차 배터리 핵심 원료인 니켈의 세계 최대 생산국이고, 코발트와 리튬 등도 풍부하게 보유하고 있다. 전기차 수요가 높아지면 관련 산업의 발전도 가능한 여건이다. 이를 위해 인도네시아 정부는 자동차에 부과하는 세금 기준을 연료 소비량과 탄소 배출량으로 바꾸는 등 전기차 구매 인센티브를 늘려가고 있다.
신남방 국가의 전기차 전환은 국내 업계에 새로운 기회가 될 전망이다. 이들 국가는 자동차 보급률이 낮지만, 소득이 빠르게 증가하고 있어 잠재력이 큰 시장으로 분류된다. 인구 1000명당 자동차 보급률은 한국이 411대 수준인 데 반해, 인도네시아는 102대에 불과하다.
또한, 대기오염 문제가 심각해 정부 차원에서 전기차 전환에 집중하고 있고, 산업 기반이 약해 자체적인 전기차 생산보다 수입이 불가피한 점도 국내 제조사에 기회 요인이다.
이미 현대차는 신남방 지역의 성장 가능성에 집중하고 2017년부터 베트남에 탄콩 그룹과 합작해 생산 공장을 운영하고 있다. 현지 생산 능력을 바탕으로 현대차는 지난해 처음으로 토요타를 꺾고 베트남 시장 판매량 1위를 달성하는 데 성공하기도 했다.
현대차는 베트남에 이어 인도네시아에도 2019년부터 생산 기지를 설립하고 있다. 15억 달러(약 1조6000억 원)를 투자해 인도네시아 델타마스에 건설 중인 이 공장은 이르면 내달 중 준공돼 연말부터 연간 15만 대의 완성차를 생산할 예정이다. 현대차는 인도네시아 정부의 요청에 따라 현지에서의 전기차 생산을 검토 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현대차는 인도네시아 공장을 신남방 시장 공략의 전초기지로 삼을 계획이다. 신남방 국가 간에는 아세안무역협정(AFTA)이 체결돼 역내에서는 부품 현지화 비율이 40%를 넘으면 완성차에 무관세 혜택이 주어진다. 인도네시아 공장에서 전기차가 생산되면 회원국 전체에 무관세로 수출할 수 있다.
신남방 지역 자동차 시장은 지금까지 일본 기업이 독점하고 있는데, 뛰어난 전기차 기술력을 앞세우면 한국 제조사가 얼마든 시장 재편에 나설 수 있다는 분석이 나온다.
업계 관계자는 "일본 제조사들이 내연기관이나 하이브리드 차량 판매에 집중해온 만큼, 국내 업계가 가격 경쟁력을 갖춘 전기차를 내세우고 공격적인 마케팅을 펼치면 승산이 있다"라며 "현지 정부에서도 과도한 일본 자본 의존을 우려하고 있고, 국민 사이에서 한국 기업에 대한 호감도 높은 상황"이라고 설명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