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경제연구원(한경연)이 미국의 공급망 강화 정책을 한국 경제를 위한 기회로 활용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한경연은 16일 보고서 '바이든 행정부의 무역정책과 한국의 대응전략'을 공개했다.
한경연은 보고서를 통해 미ㆍ중 무역갈등의 본질이 단기적 효율성 손실을 감수한 패권경쟁이라면서 미국이 주도하는 경제블록 형성이 불가피하다고 봤다. 당분간 다자간 FTA보다 미국 중심의 공식ㆍ비공식 경제협의체 방식으로 경제블록이 나타날 것이라는 관측이다.
보고서는 조 바이든 대통령의 공급망 검토 행정명령으로 작성된 '100일 평가보고서'가 글로벌 공급망 강화를 위한 동맹국 간 대통령 포럼 창설을 제안한 점을 예로 들었다. 미국과 우호국 포함 50여 개 동맹국의 GDP 합계는 전 세계 GDP 가운데 65.8%(2019년 기준)를 차지하는 만큼 미국 주도 경제 질서에 참여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태규 한경연 선임연구위원은 "산업정책에 적극적이지 않았던 미국마저 자국 산업육성과 보호를 위한 과감한 산업정책 도입을 추진하고 있는 현시점에서 미국이 다자간 FTA를 선호하지는 않을 것"이라며 "FTA 협상으로 시간을 소비하기보다는 이해가 일치하는 동맹국 간의 신속한 협의를 통해 중국을 견제하는 방식을 채택할 것”이라고 내다봤다.
또 "미국의 주요 산업 공급망에서 중국이 차지하는 비중이 높은 상황에서 중국 배제가 단기에 이뤄지기 어려울 것"이라면서 "우리나라도 점진적으로 중국에 대한 무역의존도를 줄여나가야 한다"고 주문했다.
보고서는 미국의 공급망 강화 정책의 두 가지 핵심축으로 미국 내 생산 장려와 국내 생산이 어려운 주요 상품에 대한 국제협력ㆍ공급망 안정을 꼽았다.
100일 평가보고서는 공급망 강화를 위해 미국 정부의 상당한 지원을 정책방안으로 제시하고 있다. 보고서는 국내 기업의 미국 투자는 물론 글로벌 공급망 강화과정에서 미국과 협력하면서 미국 정부의 지원을 끌어내는 노력도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보고서는 미국은 향후 ATP(Advanced Technology Products)로 분류되는 상품 수입에서 중국을 가급적 배제하고자 하는 경향이 강해질 것으로 전망했다. 이 기회를 활용해 우리나라가 중국을 대체할 수 있도록 노력해야 한다는 주장이다.
보고서는 미국의 ATP 수입 중 중국 순위는 대부분 상위권에 자리 잡고 있다면서 한국이 중국보다 상당히 낮은 규모라고 지적했다.
이어 중국에서 생산되는 ATP를 국내 기업이 대체하기 위해서는 연구ㆍ개발 세제 지원을 대폭 확대하는 등의 정책적 지원이 필요하다고 당부했다.
중국 생산 ATP 중 상당수를 차지한 첨단 해외기업들을 한국에 유치할 수 있도록 노동 경직성 해소, 규제개혁 등을 통해 투자 여건을 개선해야 한다고 주문하기도 했다.
미국이 WTO를 중심으로 한 다자주의로 복귀하는 데는 상당한 시간이 걸릴 것이라는 전망도 나왔다. 미국이 현 WTO 체제에서 중국의 경제적 패권 도전을 제어하기가 쉽지 않다는 인식이 깔렸기 때문이라는 분석이다.
이 위원은 " 중국을 견제하기 위한 WTO 개혁이 다른 저개발국가의 이해와 충돌할 가능성도 크기 때문에 미국이 원하는 WTO 개혁에는 상당한 진통이 따를 수밖에 없다"며 "세계 주요 무역국들이 경쟁적으로 산업정책을 도입하고 있는 현재 상황에서는 더욱이 보조금 협정 등 WTO의 룰 합의가 쉽지 않을 것"이라고 전망했다.
보고서는 WTO 중심의 다자주의로 복귀하는 것은 중장기과제가 될 가능성이 크다고 분석했다. 그동안 미국과의 지속적인 대화와 협력을 통해 WTO 개혁 과정에서 우리나라의 이해가 반영되도록 노력할 필요가 있다고 강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