며칠 전 우연히 친한 공무원과 세종시 생활에 관해 얘기를 나눴는데 안 그래도 요즘 공무원들끼리도 세종시로 내려와서 나아진 게 무엇인지 대화를 자주 한다고 한다. 과천에서 세종시로 와서 나아진 것은 딱 하나 공무원 특공(특별공급)을 통해 내 집을 마련한 것이란다.
세종시가 출범한 2012년에서 딱 30년 전인 1982년 정부서울청사의 역할을 분산하는 목적으로 정부과천청사가 만들어 현재 세종시에 있던 대부분 부처가 과천으로 옮겼다. 그러나 당시에는 특공 제도가 없었고 과천시 인근인 평촌 등으로 이사를 많이 했다. 1986년 공직에 입문한 홍남기 경제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도 과천청사와 가까운 경기도 의왕에 살았다.
결론적으로 보면 세종시는 실패작이다. 세종청사가 내려온 지 10년이 됐지만 결국 나아진 것은 없다. 최근 국회 분원이 내려오는 것으로 확정됐고 차기 대선 공약에서 청와대 세종집무실 설치가 유력하게 검토되고 있다. 국회나 청와대는 서울에 그대로 있고 별장처럼 만들겠다는 것이다. 세종청사가 처음 내려오고 만들어진 신조어가 길 과장, 길 국장이었는데 여기에 길 보좌관, 길 수석을 더 만들겠다는 얘기다.
최근 세종시 아파트 집주인을 분석해보니 3분의 1이 외지인이라고 한다. 외지인도 대부분 대전, 청주, 공주 등 인근 도시에 거주한다. 수도권 집중을 막기 위해 세종시를 만들었지만, 수도권 인구 분산 효과는 거의 없었던 셈이다.
또 투기꾼만 설쳐댔다. 2019년 말부터 부동산 투기꾼들이 휩쓸고 다닌 아파트마다 가격이 급등했고 2020년에는 급기야 아파트 가격이 44.93% 오르며 전국 상승률 1위를 기록했다. 세종시 아파트값 기사마다 달리는 댓글을 보면 인프라가 제대로 갖춰져 있지 않은 세종시 아파트가 10억 원이 넘는다는 데 황당하다는 글이 많다.
실제로 세종시 주요 도로는 왕복 2차선에 불과해 출퇴근 시간에는 차들로 길게 꼬리를 문다. 특히 대전, 청주, 공주를 연결하는 도로는 출퇴근 시간마다 전쟁을 치른다. 세종시에 거주하지만, 회사는 대부분 대전, 청주, 공주에 있고 양 도시를 연결하는 도로가 1~2개에 불과하다 보니 출퇴근 차량이 몰릴 수밖에 없는 실정이다. 주변 도시를 연결하는 광역버스도 거의 없어 대중교통을 이용할 수도 없다.
세종청사를 출입하는 기자들 입장에서는 고위급 공무원 취재가 어려워졌다. 대부분 서울에 있고 세종에 내려오는 경우는 드물기 때문이다. 또 과장급 공무원도 만나기로 약속을 해도 당일 서울 회의가 잡히면 미안하다는 문자를 남기고 급히 올라간다.
과천에 있을 때는 과천에서 서울까지 금방 가기 때문에 잠깐이라도 만나서 취재가 가능했지만, 세종은 그냥 취소할 수밖에 없다. 공무원들도 전문가들을 만나거나 현장의 목소리를 듣고 싶어도 세종에서는 한계가 있다고 하소연한다.
최근에 재밌는 얘기를 들었다. 처음 한국토지주택공사(LH)에서 행정도시 터 공사를 하는데 백제의 수도였던 공주시가 인근에 있지만 흔한 도자기 파편 하나 나오지 않았다고 한다. 예전부터 사람이 살 곳이 아니었다는 얘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