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까지 여야를 막론하고 대다수 정치인은 과세하는 것만 떠들 뿐 돈을 쓰는 문제는 모른 척해 왔다. 국회에 법적 근거도 없이 모진 생명력으로 기생하는 예산결산특별위원회 내의 ‘소소위’가 그 대표적인 예다. 국회의 핵인싸 몇 명이 모여 회의록도 남기지 않고 예산을 주무른다. 이런 깜깜이 심사과정에서 여야는 서로 예산을 주거니 받거니 하고 선심성 지역구 예산들도 슬쩍 끼워 넣는다. 졸속 심사는 혈세 낭비로 이어진다.
유령공항으로 외신에도 소개된 바 있는 K-지역공항, 연말 도로포장과 보도블록 교체를 대체한 교육예산 더 쓰기 운동, 2조 원이 넘게 들어간 경인아라뱃길의 초라한 운영실적, 열차당 평균 이용객이 8.6명(2020년 기준)에 불과한 간이역 수준의 KTX 공주역 등 국고 낭비의 사례는 차고 넘친다. 한국공항공사 산하 14개 지역공항 중 대다수는 코로나19와 상관없이 이미 만성적자에 시달리고 있었다. 2015년부터 2019년까지 5년간 누적적자는 여수공항 790억 원, 울산공항 744억 원, 무안공항 713억 원이다. 같은 기간 10개 지역공항의 총 누적적자는 4900억 원이다. 물론 사업을 추진하다 보면 예상과 다른 결과가 나올 수도 있다. 그러나 위 사례들은 계획단계부터 넉넉히 추단되었던 것들이다.
재정의 칸막이는 비효율과 예산 운용에 경직을 가져와 지양해야 함은 교과서에도 나오는 이야기다. 물론 예외를 둬야 할 때도 있다. 그런 경우 부작용을 염두에 두고 자세히 살펴야 한다. 교육예산 확보가 중요했던 과거에 내국세의 일정 비율을 무조건 지방교육재정으로 흘러가도록 빨대를 꽂고 칸막이를 쳤다. 저출산으로 학령인구가 급격히 줄어들고 세금 총액이 늘어나는 마당에 배분 비율까지 계속 올리니 이제 돈이 남아돈다(2018년 말 기준 5조3500억 원). 초·중·고 1인당 공교육비는 이미 OECD 평균을 훌쩍 넘어섰다. 넘쳐나는 불용액으로 돈을 살포하고 예산을 조기 집행하면 포상하는 어이없는 일들까지 벌어진다. 더 기가 차는 것은 불필요한 지방교육채까지 발행해 이자까지 부담하고 있다는 사실이다. 정부와 국회의 무관심과 부작위가 낳은 한심한 결과다.
만약 이런 일들이 기업에서 벌어졌다면 경영진은 배임죄로 기소될 감이다. 국가 차원에서 일어나는 예산 낭비는 기업 단위의 것보다 엄중하다. 재정건전성과 국가에 대한 신뢰를 훼손한다. 신뢰 훼손은 국가의 조세고권을 흔든다. 그런 점에서 국고 낭비는 침윤성과 전이하는 특성을 가진 악성종양이다.
문재인 정부가 출범 초기 그러했듯 정치인들은 재정지출 개혁을 만만하게 본다. 그러나 의욕만 앞선 선동적인 구호만으로는 재정지출을 절대 개혁할 수 없다. 여야가 머리를 맞대고 지속적이고 진중한 논의를 해야 하지만 현실은 어둡기만 하다. SNS 따위에 매달려 자극적인 메시지나 남발하고 당장 인기를 끄는 얕은 정책에 몰두하는 깃털처럼 가벼운 요즘 정치인을 보면 한숨이 나온다. 어쩌면 처음부터 개혁할 진심조차 없었던 듯싶다. 공약의 재원 조달 방안을 묻는 말에 대선후보들의 한결 같은 대답은 재정지출 개혁이란다. 일단 대충 얼버무리고 나중에는 나 몰라라 한다.
이런 식이면 재정 투입이 필요한 새로운 사업을 추진할 때 기존 지출을 줄이는 등의 재원 확보 대책도 함께 마련하라는 페이고(pay-go) 원칙을 한시적으로 증세 문제에 도입하는 것도 생각해 볼 일이다. 돈이 필요하면 반드시 다른 지출을 줄이도록 해야 진정성을 갖고 재정지출 개혁 논의 테이블에 앉지 않을까. 돈을 더 내놓으라고 채근하기에 앞서 쓰는 것부터 살피라. 그게 상식에 맞고 일의 순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