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년 러시아 제조업체 약 81%가 부품 수입
은행·기업의 90%, 서방 소프트웨어 사용
20일(현지시간) 월스트리트저널(WSJ)에 따르면 최근 러시아 주요 산업체들이 잇따라 생산을 중단하고 있다. 서방 사회 제재로 핵심 부품 조달이 어려워지면서다. 러시아 자동차 제조업체 카마즈는 “반도체 수입이 어려워져 생산량이 최대 40% 줄어들 가능성이 있다”며 “공급망 문제가 해결될 때까지 인력 1만5000명이 일자리를 잃게 됐다”고 밝혔다.
러시아 기업들이 직격탄을 맞은 배경에는 대폭 커진 수입 의존도가 자리하고 있다. 러시아 가이다르경제정책연구소 분석 결과 작년 러시아 제조업체의 약 81%가 부품을 수입하고 있다고 밝혔다. 이는 2015년 조사를 시작한 이후 최고치다. 러시아 국립고등경제대학(HSE) 연구에서도 2020년 러시아의 비(非)식품 소비재 매출 가운데 수입품 비중이 75%를 차지했다. 통신장비의 수입품 비중은 86%에 달했다. 2020년 수입이 러시아 국내총생산(GDP)에서 차지한 비중은 20%에 달해 중국(16%)보다도 컸다.
특히 첨단기술의 경우 러시아의 서방 의존도가 극에 달한 것으로 나타났다. 러시아 은행과 기업의 약 90%가 서구 소프트웨어를 사용하고 있다. 군사강국 러시아가 민간 항공 시장에 재도전하며 2007년 공개한 ‘수퍼제트100’조차 부품의 절반을 수입에 의존했다.
핀란드국제문제연구소의 마리아 샤기나 연구원은 “많은 노하우와 투자가 필요하지 않은 저기술 품목은 러시아산으로 대체가 가능했지만 첨단기술은 서구의 기술, 소프트웨어, 노하우에 크게 의존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이 같은 현실은 러시아가 서방 제재에 맞서 추진한 자립경제 계획이 실패했음을 보여준다. 러시아는 2014년 크림반도 병합 이후 서방 제재 대응 전략으로 수입품을 자국산으로 대체하는 전략을 추진했다. 러시아 경제를 요새화해 살아남겠다는 의도였다. 2015~2020년 러시아 정부가 이를 위해 쏟아부은 돈만 2조9000억 루블(약 35조 원)에 달한다.
이달 초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은 “우리는 제재를 받으며 발전했고 엄청난 성공을 이뤘다”고 말했다. 그러나 현실은 달랐다. 2014년 이후 러시아의 국내총생산(GDP) 성장률은 세계 평균에 뒤처졌다. 2020년 말 1인당 실질소득은 2013년보다 9.3%나 하락했다.
독일 국제안보문제연구소의 러시아 경제 전문가인 야니게 클루게는 “러시아같은 소규모 경제는 자체적으로 복잡한 첨단기술 제품을 생산할 수 없기 때문에 러시아의 야망은 시작부터 비현실적이었다”고 말했다.
러시아의 경제 위기가 악화할 가능성이 커진 가운데 중국이 변수로 떠올랐다. 중국이 서방사회를 대신해 상품 공급자 역할을 해줄 수 있다는 이유에서다. 그러나 서방과의 관계 악화를 감수하고 중국이 어느 정도까지 러시아 지원에 나설지 불명확하다. 또한 중국도 반도체 등 첨단기술 제품 생산에서 서방에 밀리기 때문에 러시아의 수요를 맞추기에는 역부족이라는 분석도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