혁신은 신기술이나 새로운 수요를 기반으로 아무도 추진하지 않는 창의적 사업에 도전하는 기업가 정신에서 시작한다. 4차 산업혁명이 이야기되는 이 시기에 기업가의 창의성이 무엇보다 중요하다. 창의적인 기업가가 가장 불편해하는 것은 아마 규제일 것이다. 시장에서 통할 수 있는 새로운 기술이나 사업을 고안하는 것만도 매우 어려운 일인데, 이것을 복잡한 규제에 맞추어 서류를 만드는 것은 더 힘이 든다. 이것이 한국에서 사업을 하고 있는 사람과 하려는 사람뿐 아니라, 외국인투자자까지 공통적으로 지적하는 내용이다. 한국의 규제 상황을 간단히 짚어보자.
먼저 한국의 규제는 복잡하고 자의적이다. 규제 근거도 법률과 시행령, 조례와 예규, 행정지도 등 다양한 형태로 존재하여 알기도 어렵다. 법규에 근거하지 않은 규제와 행정 간섭도 적지 않아 담당자가 바뀔 때마다 달라지는 경우도 있다. 또한 법규에는 아주 강하게 규정해 놓고 평상시에는 거의 적용하지 않다가 문제가 생길 때 선별적으로 적용하는 규제도 있다. 이러다 보니 규제가 자의적이고 예측 불가능하게 되는 것이다. 기업의 입장에서는 강한 규제보다 일관성 없는 규제가 더 대응하기 어렵다. 특히 사업체의 신규 설립에 대한 행정권 자의적 규제가 더 문제가 크다. 신규 진입에 대한 규제는 기득권자에게는 가장 강력한 보호 장치이며, 창업자에게는 가장 큰 걸림돌이기 때문이다.
규제가 많고 복잡해진 것은 관료, 이권단체, 일부 시민단체 등이 규제를 선호하기 때문이다. 관료는 주로 행정 편의와 권한 확보를 위해, 이권단체는 밥그릇을 챙기기 위해, 시민단체는 활동 영역의 확보를 위해 규제를 만든다. 여기에다 정치인들도 관료나 이권단체 등과 이해를 같이 하는 경우가 많다. 규제 중에는 당연히 필요한 것도 있고, 불필요한 규제와 필요한 규제를 구분하기 어려워 규제개혁이 더 어렵다. 한국은 이러한 이유로 규제가 지속적으로 확대되는 경향이 있고, 한번 생긴 규제는 없애기도 쉽지 않은 상황이다.
다음으로 법이나 규정에서 허용하는 것만 할 수 있도록 하는 한국의 포지티브 규제 방식도 혁신을 제약한다. 법규에서 허용된 범위 안에서만 새로운 것을 만드는 혁신은 한계를 가질 수밖에 없어 큰 혁신이 나오기 어렵다. 이렇기 때문에 법이나 규정을 마련하거나 이를 개정하는 과정에서 창업이나 투자의 시기를 놓쳐 혁신적인 아이디어로 국내에서 사업화하는 데 실패하는 일이 발생할 수밖에 없다. 규제 체계가 미국 등과 같이 법규에서 금지한 것을 제외하고는 모두 할 수 있는 네거티브 규제 방식이어야 혁신이 활발히 이루어지는 것이 당연하다. 한국도 규제 개선을 위해 부분적인 네거티브 규제원칙이 적용되는 규제샌드박스와 규제자유특구가 운영 중이나, 범위가 제한적이고 이 원칙의 적용 기간이 짧아 효과가 크지 않은 것으로 보인다.
윤석열 정부의 혁신이 성공하려면 말로만 하는 혁신이 아니라, 실질적인 규제 완화와 함께 규제 체계의 개혁도 이루어져야 한다. 규제 개혁은 규제의 이익을 누려온 관료, 이권단체, 시민단체 등의 저항이 아주 커 어렵고 시간이 많이 걸린다. 과거 정부와 같이 규제 전봇대 제거나 손톱 밑 가시 뽑기처럼 보여주기식 일회성으로 끝나면 효과가 거의 없다. 각 분야 전문가로 구성된 규제개혁위원회가 관료 등을 실력으로 압도하면서 작은 것부터라도 지속적으로 추진하여야 규제 완화가 조금이나마 가능하다.
그리고 규제 체계를 포지티브 방식에서 네거티브 방식으로 전환하는 것은 더 어렵다. 안 가본 길이라 관료들의 적응이 어렵고, 사람들의 생각을 바꾸는 것과도 관련이 있기 때문이다. 네거티브 규제는 미국 등 선진국에서 오랫동안 해오는 방식이라 준비만 철저히 하면 큰 부작용 없이 실행할 수 있다. 우선 은행산업과 같은 특정 산업을 선정해서 시범 실시하고, 적용 산업을 확대해 나가는 것이 방법이다. 그러다 보면 사람들도 생각이 ‘법에 없어서 못 한다’가 아니라 ‘법에 하지 말라는 말이 없어 한다’로 바뀌고 혁신은 활발해질 것이다. 한국의 규제는 산업뿐 아니라 일상생활까지 광범위하다. 규제 개혁과 혁신이 활발해지면 산업경쟁력이 높아질 뿐 아니라 국민들의 실질적 삶도 개선된다. 윤석열 정부의 혁신이 성공하길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