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방로] 우리 청년들에게 잠깐의 자유를

입력 2022-04-11 05: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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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년들의 여유는 창의·혁신으로 돌아온다

필자의 영국 유학 시절, 같은 연구실을 쓰던 덴마크 친구가 있었다. 28세였던 필자보다 서너 살 정도 어렸지만, 같이 박사과정을 시작해서인지 제법 친하게 지냈다. 어느 날 밤 필자의 기숙사에 초대해서 한국 음식을 만들어 먹으며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던 중, 덴마크에서는 외국에서 공부하는 자국의 박사과정 청년들에게도 생활비를 지급한다는 말을 들었다. 북유럽 복지국가에서는 대학생들에게 수업료 면제는 물론 생활비를 준다는 것을 익히 알고 있었지만, ‘외국에서 박사과정을 하는데도?’라는 생각을 품으며 무척이나 부러워했다.

그래서인지, 그 친구는 제법 여유를 가지고 학위과정을 밟았던 것으로 기억한다. 저녁에는 영국 프리미어 리그 축구를 즐기고, 가끔 여행도 하며, 여름에는 제법 긴 휴가를 보냈다. 어렵사리 영국 정부와 대학으로부터 장학금을 받긴 했지만, 다른 한국 유학생들처럼 빨리 학위를 마쳐야 한다는 강박관념에 사로잡혔던 필자에게 그런 여유는 사치였다. 돌아보면 유럽여행도 하며 견문을 넓히고 많은 친구들과 어울리며 학계의 인맥을 넓혔으면 좋았으련만, 청년 시절을 치열하게 보낸 만큼 중년에 접어들며 그 시절을 회고하니 진한 아쉬움이 남는다.

20여 년이 지난 지금, 한국 청년들은 우리 세대가 살았던 것보다 더 치열한 삶을 산다. 20대 초의 청춘이라면 당연히 누려야 할 것으로 여겼던 대학의 낭만은 더 이상 보이지 않는다. 새내기들이 더 좋은 대학을 가기 위해 반수를 선택하며 괴로운 입시를 반복하는 것은 다반사이고, 설령 원하는 대학과 전공에 안착했다 해도 잠시의 기쁨을 뒤로하고 안정된 직장이라는 목표를 향해 다시금 치열함을 장전한다. 생활비를 벌기 위한 아르바이트, 취업의 기본인 학점 관리, 자기계발, 스펙 쌓기는 물론, ‘인싸’가 되기 위한 인맥관리와 SNS도 놓칠 수 없다. 몸이 열 개라도 부족한데 기성세대는 으레 청춘은 그런 것이라며 공감을 표하지도, 지원을 해줄 생각도 없다.

우리는 기초노령연금제도의 확대를 통해 노인 문제에 대응해 온 경험이 있다. 하위 70%의 노인들에게 월 20만∼30만 원씩 지원되는 기초노령연금은 매우 부족한 액수임에도 우리나라의 노인빈곤율과 노인자살률을 감소시키는 데 크게 기여한 것으로 평가된다. 연간 600만 명에게 월 30만 원을 지급할 경우 소요되는 기초노령연금 예산은 20조 원 이상. 이제 청년들에게 눈을 돌려, 기초노령연금 소요 재정의 10%만 편성할 수 있다면 100만 명의 청년들에게 연간 200만 원을 지원할 수 있다. 아르바이트 시급을 1만 원으로 가정하면, 이 100만 명의 청년들에게 1년 동안 200시간(또는 1주일에 4시간)의 자유를 안겨주는 셈이다. 올해 스무 살인 2003년생이 50만 명이 채 되지 않으니 100만 명이라면 2년간의 지원이 가능하다는 계산이 나온다. 보편적으로 일정 연령의 모든 청년을 지원할 것인지, 아니면 하위 70%만 대상으로 선별할 것인지는 정책의 선택사항으로 또 다른 치열한 논쟁이 필요하겠지만 말이다.

청년이 이 나라의 미래임을 인정한다면, 숨 막히는 경쟁에 절여지는 이 땅의 청년들에게 잠시 여유를 주는 것은 기성세대의 책무이다. 덴마크 친구가 누렸던 20대 시절의 여유는 국가의 청년에 대한 투자에서 비롯되었음을 기억해야 한다. 공부하며 미래를 준비하는 기간에 다양한 경험을 할 수 있도록, 잠시 치열한 삶을 벗어 두고 자기의 앞날을 진지하게 성찰할 수 있는 얼마간의 자유를 주자. 청년들이 누리는 약간의 여유는 우리 경제에 꼭 필요한 창의력과 혁신으로 돌아올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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