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평] 봉준호 영화를 12개 코드로 해부하다… ‘봉준호 코드’

입력 2022-04-13 13: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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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미다스북스)
▲(출처=미다스북스)

대중과 평단의 관심을 동시에 얻다.

진부한 표현이다. 그러나 이 진부한 표현에 해당하는 영화감독은 그리 많지 않다. 대중의 취향과 평단의 감식안이라는 것은 평행선을 달리는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합일을 이루기가 어렵다는 말이다. “평론가가 극찬한 영화는 걸러야 한다”는 말은 그래서 농담이 아니다.

그런 점에서 봉준호는 영리한 감독이다. 그는 ‘대중성’과 ‘예술성’이라는 두 마리 토끼를 동시에 잡을 줄 안다. 그의 첫 1000만 영화인 ‘괴물’을 살펴보자.

이 영화는 괴수영화다. 봉준호는 영화 초반부에 관객들이 괴수영화에 기대하는 장르적 재미를 충분히 선사한다. 중반부를 넘어가면서는 “왜 이런 괴물이 탄생할 수밖에 없었을까?”라는 묵직한 질문을 던지며 정치 및 사회문제 영화로 돌변한다.

‘기생충’ 역시 마찬가지다. 영화는 초반부에 케이퍼 무비(Caper movie : 강탈 및 절도하는 과정을 상세히 보여주는 영화)로서의 재미를 준다. 이른바 ‘초인종 소리’ 이후엔 호러 장르(horror genre)로 급변한다. 여기에 ‘계급투쟁’이라는 사회적 메시지까지 던진다.

이처럼 장르의 경계를 허물며 “봉준호 자체가 장르”라는 극찬을 받았던 봉준호. 그는 마침내 ‘기생충’으로 아카데미 시상식과 칸 영화제의 최고상을 동시에 거머쥐며 세계영화사의 한 페이지를 화려하게 장식했다.

이후 봉준호의 영화를 분석하는 수많은 도서가 나왔다. 도서들은 대개 봉준호의 작품에 관한 논평과 인터뷰 등으로 구성됐다. 최근 출간된 ‘봉준호 코드’는 이용철, 이현경, 정민아 등 세 명의 영화평론가가 봉준호 영화를 ‘12개의 코드’로 분석한다는 점에서 이채롭다.

세 평론가는 “이 책은 이전에 발표된 글들과 접근 방식을 달리했다. 7편의 작품을 하나의 일관된 전집으로 보면서 작품 한 편마다가 아니라 봉준호 월드 안에서 몇 가지 핵심 키워드를 선정해 이것이 영화 안에서 어떤 방식으로 코드화되어 있고, 관객은 그 코드를 어떻게 받아들이고 있는지 조목조목 살펴본다”고 밝혔다.

봉준호 영화를 해석하는 ‘12개의 코드’

세 명의 평론가가 제시한 12개의 코드는 엄마, 소녀, 노인, 하녀, 계단, 비, 돈, 자연, 먹기, 달리기, 섹스, 바보짓 등이다. 차례대로 살펴보자.

우선 이현경은 영화 ‘마더’의 김혜자 캐릭터를 예로 들며 “한국 영화사에 등장하는 가장 문제적인 엄마 중 하나”라고 말한다. 이 캐릭터는 모성 신화를 탈피하며 자식에 대한 기괴한 집착을 보인다. 아들과의 성적 긴장감까지 형성한다는 점에서 흥미롭다.

다음은 ‘소녀’다. 봉준호의 모든 장편에는 소녀가 등장한다. 정민아는 “봉준호 영화에서 소녀가 주변화되거나 대상화되었던가 하면, 반대로 행동과 사건의 적극적 주체로 그려진 일도 많다”고 설명한다. 이에 따라 봉준호 영화에서 사라지거나 살아남은 소녀의 의미를 탐구한다.

‘노인’ 코드도 재미있다. 이용철은 “노인 문제에서 종종 다루는 ‘가족, 부양, 노령화’ 같은 것들이 봉준호의 영화에서 전면에 드러난 적은 없다”고 밝힌다. 그러면서 노인이 아닌 ‘연장자’, ‘손윗사람’의 개념으로 봉준호의 페르소나인 배우 변희봉이 맡았던 캐릭터를 살핀다.

이어 이용철은 ‘기생충’에 등장하는 가정부 캐릭터를 ‘하녀’로 명명하며 과거 하녀가 등장하는 다른 영화들과 ‘기생충’을 비교한다. 아울러 ‘기생충’에 등장하는 빈자들이 인간이 아닌 벌레로 취급받는 지점을 언급하며 계급 및 빈부 격차의 문제를 지적한다.

‘계단’은 봉준호 영화의 중요한 공간이다. 알려졌다시피 ‘기생충’에 등장하는 계단은 김기영의 ‘하녀’에 등장하는 계단 이미지와 맥이 닿아있다. 정민아는 “‘기생충’은 계단을 활용하여 우리가 사는 시대의 고착화된 계급 문제를 유머 요소로 활용한다”고 설명한다.

다음은 ‘비’다. 이현경은 “봉준호 영화에서 비는 결정적인 국면에 등장하는 플롯 장치”라고 평한다. 감정의 등가물, 국면 전환의 시그널, 광기의 기폭제, 은폐와 폭로의 은유물로 비라는 장치가 활용된다는 게 그의 설명이다.

이어 이현경은 “봉준호 영화는 자본주의를 거시적인 이념과 체제로 사유하는 것이 아니라 돈이라는 구체적인 물질로 즉물적으로 포착해내는 데 탁월하다”고 말한다. 특히 돈 이야기가 많이 등장했던 ‘괴물’을 통해 ‘돈의 윤리학’에 대해 논한다.

이용철은 ‘자연’이라는 코드를 경유해 봉준호의 영화들을 살핀다. 특히 봉준호가 오프닝 시퀀스에 자연의 풍경을 제시하며 시작하는 관습을 예로 들며 ‘여자=자연’, ‘남자=부자연’의 도식으로 그의 영화들을 탐색한다.

‘먹기’라는 코드 역시 봉준호 영화에서 중요한 행위다. 이용철은 “‘괴물’의 주요 이야기는 먹으려는 괴물과 먹히지 않으려는 현서의 관계에서 나온다”며 “먹는 것은 계급적이고 폭력적인 행위”라고 설명한다.

다음은 ‘달리기’다. 정민아는 “1980년대를 살았던 시대적 경험은 봉준호 영화에서 ‘달리기’라는 행위에 응축되어 나타난다”고 말한다. 산업화, 민주화, 고도경제 성장 등 세 시기를 살아온 봉준호에게 달리기는 하나의 기표라는 것이다.

‘섹스’도 봉준호 영화에서 곱씹어볼 만한 테마다. 이현경은 “봉준호 감독 영화에서 섹스는 계층적인 차이를 보여주는 핵심적인 요소 중 하나”라고 말한다. 그는 봉준호 영화에서 섹스가 중요한 요소임에도 불구하고 은밀하게 취급되고 있는 점을 파헤친다.

마지막은 ‘바보짓’이다. ‘괴물’의 송강호, ‘마더’의 원빈, ‘기생충’의 박명훈 캐릭터가 그 예다. 정민아는 “봉준호는 간혹 바보를 주인공으로 내세운다. 이들은 핍박받는 자이며, 무시당하는 자이지만, 심오한 깨달음을 주거나 어지러운 세상을 구원한다”고 설명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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