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2년, 여수엑스포와 동시에 가수 버스커버스커의 노래 ‘여수밤바다’가 탄생했다. “여수밤바다, 이 조명에 담긴 아름다운 얘기가 있어, 네게 들려주고파” 풋풋한 연애의 설렘이 담긴 이 노래는 엑스포와 더불어 엄청난 성공을 거두었는데, 2011년 당시 702만 명에 불과하던 관광객이 2012년 1525만 명으로 폭발적으로 증가하면서 5년 연속 1000만 명을 넘어서는 대한민국 대표 관광지로 성장하는 데 톡톡한 공헌을 했다. 노래 탄생의 배경이 되었던 해양공원에는 여수 밤바다와 함께 즐길 수 있는 낭만포차가 있어 관광객들에게 낭만적인 추억을 선물하고 있다.
조선 성종 10년, 전라좌수영이 설치되어 고종 32년에 이르기까지 약 417년간 여수는 남해안 방어의 주진으로 국방상 중요한 곳이었다. 특히 임진왜란 당시 경상도 수군이 모두 무너진 상황에서 여수의 전라좌수영은 충무공 이순신을 중심으로 나라를 구하기 위한 최후의 전쟁기지였다. 약무호남 시무국가(若無湖南 是無國家, 호남이 없었다면 국가가 보전될 수 없다)라는 말의 유래가 바로 여기에서 비롯되었으며, 때문에 여수 곳곳에서는 충무공 이순신의 흔적을 찾아볼 수 있다. 다시 중건된 조선시대 전라좌수영 건물인 진남관과 그 앞에 자리 잡은 이순신광장, 국내 최장의 이순신대교, 그리고 매년 5월 5일 시작하는 거북선 축제 등. 국가와 국민을 수호하기 위해 온몸을 내던졌던 구국 영웅들의 이야기와 흔적들을 찾아보는 여행의 재미가 색다르다.
조선총독부가 1936년 철도를 국유화하기 전까지 남조선철도주식회사는 우리나라 철도부설에 중요한 역할을 하고 있었다. 남조선철도주식회사는 1928년 여수지역 철도 부설을 위한 부지 확보에 나섰는데 바로 이 부지 매입 문제로 철도국과 여수군을 상대로 한 여수농민회의 투쟁이 시작되었다. 당시 남조선철도주식회사와 여수군, 그리고 조선인 지주로 구성된 주선위원들은 철도부지 매입을 통한 지가 상승의 차익과 이익 챙기기에 급급하여 저가 매입을 강행하였다. 조선인 소지주들에게는 시가보다 3분의 1 수준의 낮은 가격으로, 일본인 대지주들에게는 시가 두 배 이상으로 땅을 사들였는데, 너무 낮은 토지가격에 불안을 느낀 농민들에게 가격이 오를 때엔 오른 가격에 따라 차액을 지불하겠다는 거짓 계약을 진행하기도 하였다. 이에 여수농민회는 수차례 농민대회를 열어 농민들에게 헐값에 땅을 팔지 말도록 권유하였고, 조선인 소지주와 자·소작농들은 경성에 대표단을 파견, 3년여에 걸친 투쟁 끝에 남조선철도주식회사와 여수군의 속셈을 폭로하는 데 성공한다.
자료=국가철도공단 ‘한국의 철도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