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0여개 대형건설사들의 모임인 한국주택협회는 2000년대 초반만 하더라도 건설업 유관기관 중 가장 '힘 있는' 단체로 꼽혔다. 국내 건설시장의 절반 이상을 차지하고 있는 업체들의 모임인 만큼 단순 친목모임 성격을 넘어 정부 주택시장 정책을 바꿔놓을 정도의 위력을 갖고 있는 것으로 평가돼 왔다.
하지만 이같은 한국주택협회의 위상은 현재 크게 위축된 상태다. 지난 2005년 8.31대책 이후 주택시장 흐름에서 정부에 완전히 예속돼 있으며, 주택시장 관련 규제 완화에 대해 대정부 접촉에서도 유사기관인 대한건설협회에 완전히 주도권을 뺏긴 상태다.
더욱이 대한건설협회가 해외시장 판로개척을 위해 중동 및 아프리카 각국과 MOU체결에 나서는 등 활발한 대외 활동을 하는데 비해 외부활동도 뜸해 주택협회는 존재감도 적잖이 위축된 분위기다.
이 같은 한국주택협회의 위상 추락은 회원사들의 무관심이 가장 큰 역할을 한 것으로 지적된다. 한국주택협회 소속 회원사들은 모두 '자력'으로 주택사업을 영위해나갈 수 있는 대형업체인데다 주택사업 비중도 갈수록 줄이는 업체가 많은 만큼 굳이 주택협회의 선도 역할이 필요치 않았던 것이다.
여기에 대형 건설사들은 대부분 재벌그룹 계열사들이라 대부분의 CEO들은 '고용사장'에 불과한 경우가 많아 결정권한은 제한돼 있다는 점도 주택협회 이사회가 갖고 있는 문제점이다. 특히 협회장 선임시 선임자격인 대표이사를 겸하는 CEO를 찾기가 어려워 협회장 교체시기 마다 인선에 어려움을 겪는 것도 주택협회의 고충 중 하나다.
또 굴지의 대형 건설사들이 가득한 만큼 이들을 아우를 수 있는 '힘있는' 협회장을 선임하기도 쉽지 않다. 웬만한 인물이 나서면 한마디로 '영(領)'이 서지 않기 때문이다.
심지어 업계 일각에서는 이러한 주택협회를 유엔(UN)의 강대국들의 모임으로, 한 국가라도 거부할 경우 안건 통과가 불가능한 'UN 안전보장이사회'에 비유하기도 할 정도다.
실제로 주택협회 내에서도 S사 등 몇몇 국내 굴지의 재벌 계열 건설사들이 주택업계 발전을 위해 노력하지 않는다는 성토까지 나오고 있는 실정이다.
주택협회 한 관계자는 "이사회를 열어도 성원을 채우기가 힘들어 소집 자체가 어려운 경우가 많다"며 "이사회 결정사항에 대해서도 행동통일을 요구하기도 힘들다"라고 말했다.
주택협회는 지난 2007년 신훈 금호아시아나 그룹 건설부문 부회장이 새로운 협회장으로 선임됐을 때만 해도 축제 분위기였다. 실로 오랜 만에 '힘있는' 협회장이 선임됐다고 자평했었다.
하지만 신 회장 휘하의 한국주택협회는 새정부와의 주택시장 관련 규제 완화 조율부문에서 권홍사 회장의 대한건설협회에 '밀리는' 듯한 인상을 줬고, 지난해 11월 소속 회원사들에 대한 대주단 가입 독촉시 '청와대 지시' 파장을 낳으면서 신훈 회장이 사퇴 의사를 밝히는 최악의 경우까지 벌어지게 된 것이다.
김정중 회장의 한국주택협회도 출발은 다소 불안해 보인다. 대표이사 직함을 갖고 있다해도 김정중 신임 회장 역시 오너의 지시를 받아야 하는 CEO인 만큼 주택협회 업무에 전념할 수 있을지 미지수기 때문이다.
실제로 대한건설협회가 노무현 정부 이후 크게 업무역량이 성장할 수 있었던 가장 큰 이유는 무엇보다 권홍사 회장이 자신이 오너로 있는 반도건설 업무를 도외시하면서까지 협회 업무에 매달리고 있다기 때문이란게 건설업계의 지적이다.
주택협회는 현재 김정중 신임회장의 역할이 크게 강화될 것을 기대하고 있다. 하지만 이에 앞서 회원사들간의 유기적인 협조가 가장 먼저 필요하다는게 업계의 시각이다.
이에 대해 한 건설업계 관계자는 "주택협회의 위상이 강화될 수록 주택업체들에게 해가 될 것은 없다"며 "협회가 '힘'을 발휘할 수 있는 여건을 만들어주는 것이 급선무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