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I 연구와 관련된 게임에서의 경기자(player)는 대학교와 연구자들, 그리고 국가로 나누어 볼 수 있다. 최근 국가는 10여 개의 대학교를 선정하여 AI 대학원 프로그램 운영에 각각 10년간 190억 원을 지원하기로 하는 등 적극적인 교육 및 연구 지원을 해왔다. 4차 산업혁명이 진행되고 있고, AI 기술이 그 핵심으로 떠오른 상황에서 다른 국가에 뒤처지지 않기 위하여 적극적으로 움직인 것으로 보인다. 이렇게 국가의 투자를 받은 대학은 석박사급 인재를 양성하고 연구 성과를 내야 한다. 주어진 기간 내에 일정 숫자 이상의 졸업생을 배출하는 동시에 양질의 연구 성과를 낼 수 있어야 연구비가 회수되거나 지원 규모가 축소되는 일을 막을 수 있는 것이다. 이 대학이 느끼는 연구 압박은 고스란히 대학원 구성원들, 연구자들에게 전달된다. 교수와 학생, 모두가 연구 압박을 받게 되는 것이다.
일반적으로 이러한 연구 압박은 명시적으로 전달된다. 연구자들이 참여하는 연구과제마다 발간해야 하는 논문의 숫자가 명시되거나, 학생들의 졸업요건으로 논문발간 의무가 명시되는 방식이다. 연구비를 받은 만큼, 학비를 지원받은 만큼 기한 내에 성과를 내야 한다는 압박은 상당히 높아질 수밖에 없다. 물론 외부에서의 압박만 있는 것이 아니다. 연구자 개인 역시도 스스로의 미래를 위하여 좋은 성과를 만들어내야 할 유인(incentive)을 가진다. 특히 학생의 경우 유망한 분야의 연구를 하고 있는 만큼 빠르게 실적을 낼 수 있다면, 좋은 교수 자리나 연구원 자리를 차지하는 기회를 얻게 될 수도 있다.
여기서 또 주목할 점은 미국과 한국 학계의 AI 관련 분야 실적평가 기준이 상당히 큰 차이를 보이고 있다는 것이다. 미국에서는 빠르게 발전하고 진화하는 기술 분야인 만큼, 상당한 시간 소요가 있을 수밖에 없는 논문 발간을 그다지 중요시하지 않고, 콘퍼런스에서의 발표나 개발기술 공유실적 등을 중심으로 질적 평가하는 경우가 많아지고 있는 반면, 한국은 여전히 논문발간 실적을 중심으로 평가를 하고 있는 것이다. 이러한 한국의 실적평가 기준은 더 많은 논문을 발간해 내도록 할 수는 있을지 모르지만, 정작 연구자들이 최첨단의 연구를 선도하도록 유도하지는 못하고 있다. 압박만 남기고 궁극적인 실적은 사라지게 하는 것이다. 그러다 보니 연구자들은 뒤처지고 따라가는 연구에 익숙해지고, 다른 연구를 참고하는 것을 넘어, 다른 연구논문을 표절하고자 하는 유혹에 쉽게 빠지고 있는 것인지도 모른다.
AI 분야 연구자들 중에서는 “기술은 가지고 있는데 무엇을 연구하고 분석해야 할지 모르겠다”는 하소연을 하는 이들도 있다. 참으로 안타까운 일이 아닐 수 없다. 기술은 가지고 있고, 그 기술을 기반으로 국가의 연구비 지원도 받아냈지만, 그 기술을 어떻게 써야 할지 모르겠기에, 외국의 연구사례를 보고 비슷한 주제를 찾는 요령을 피우는 연구자들도 많다. 이러한 연구자들이 표절의 유혹에 빠지지 않게 하려면 실적평가 기준에 대한 비판적 고민과 함께 국가적 AI 연구 지원의 방향성을 다시 한번 짚어보아야 할 것이다. 물론 연구윤리 교육 강화가 무엇보다 중요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