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유업계 1위인 서울우유협동조합(서울우유)의 낙농가 목장경영 안정자금을 지원을 두고 정부가 사실상 우유 가격 인상이라며 지원을 줄이겠다며 반발하고 나섰다. 서울우유는 최근 물가 상승에 어려움을 겪는 농가를 위한 것이라고 하지만, 우유 가격 관리에 힘썼던 정부는 서울우유의 독단적 가격 인상이라고 강력 대응을 예고했다.
22일 농림축산식품부와 업계에 따르면 서울우유는 이달 16일 대의원총회를 열고 낙농가에 월 30억 원(연간 360억 원) 규모의 목장경영 안정자금을 지원하기로 했다.
서울우유는 지원금이 원유가격 인상은 아니라고 해명한다. 그러나 지원금만큼 비용을 쓴 것으로 볼 수 있어, 낙농가에 지급하는 원유가격을 사실상 L(리터)당 58원 인상했다는 해석도 가능하다.
통상 매해 8월 1일부터 조정되는 원유 가격은 낙농진흥회 이사회에서 공식화하는데 올해는 현재까지 관련 논의가 시작조차 되지 않은 상황이다.
낙농진흥회는 유제품의 수급조절 등을 위해 설립된 기구로 매해 원유 생산량의 약 3분의 1을 사들인 후 유업체 등에 공급한다.
낙농진흥회로부터 원유를 직접 사지 않는 유업체들도 대체로 이 기구가 결정한 원유 가격을 준용한다.
서울우유 역시 원유를 낙농진흥회로부터 수급하지는 않으면서도 낙농진흥회의 결정 가격을 적용해왔지만, 올해는 사실상 독자적인 가격 인상을 단행한 것이다.
정부가 강경 반응하는 이유는 정부가 우유 가격 책정 방식을 바꾸는 방안을 추진 중에 있기 때문이다.
우유 가격은 수요·공급이 아닌 생산비 기준으로 가격을 정하는 ‘원유가격연동제’를 따른다. 매년 5월 통계청이 발표하는 우유 생산 가격이 일정 수준 이상 오르면 이를 원유 가격에 반영한다. 특수목적 법인인 낙농진흥회(생산자·유업체·정부·소비자·학계 등 이사진 15명)에서 매년 협상을 통해 원유 가격을 결정하고, 이 가격을 유업체·낙농가가 따르는 것이 일반적이다.
서울우유는 낙농진흥회 소속이 아니므로 가격을 자율적으로 정할 수 있다. 관례를 깨고 가격을 먼저 올릴 수 있었던 이유다.
정부는 우유 소비가 줄어드는 데도 계속 우유 가격이 오르는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원유를 ‘음용유’와 ‘가공유’로 나누고, 음용유 값은 현 수준을 유지하되 가공유값은 싸게 책정하는 ‘원유 용도별 차등가격제’를 추진하고 있다. 유제품 소비가 증가하는 만큼 가공유값을 낮춰 국내산 원유의 구매 여력을 높이고, 자급률도 높이겠다는 계획이다.
하지만 ‘원유 용도별 차등가격제’를 놓고 유업계(찬성)와 낙농가(반대)가 이견을 좁히지 못해 낙농진흥회 협상이 무기한 연기되면서 원유 가격 결정도 미뤄지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서울우유가 가격을 올린 것이다.
원유 용도별 차등가격제 도입을 비롯한 낙농제도 개편을 완수한 후 새 제도에 따라 올해 원유가격을 조정하려던 정부의 애초 계획은 차질이 빚어졌다.
낙농가 단체인 한국낙농육우협회가 농가 소득 감소가 우려된다며 반발하고 있지만, 우유 업체는 대체로 정부안에 찬성해왔다. 우유 업체로서는 가공유 구매 비용을 절감하는 효과를 누릴 수 있기 때문이다.
정부는 낙농가들을 설득해 용도별 차등가격제를 업계에 일괄적으로 도입할 방침이었는데 서울우유가 이번에 현행 구조하에서 가격을 일방적으로 조정한 것이다.
박범수 농식품부 차관보는 브리핑을 열고 “서울우유의 결정이 아쉽지만 받아들일 수밖에 없다”며 “서울우유에 용도별 차등가격제를 강제로 적용하지는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대다수의 다른 유업체의 입장은 변하지 않을 것으로 본다”며 “앞으로 낙농진흥회를 통해 용도별 차등가격제 도입을 희망하는 조합·유업체를 중심으로 제도 개편작업을 흔들림 없이 추진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정부는 서울우유를 정책 지원 대상에서 배제하는 것까지도 고려하고 있다.
박 차관보는 “최종 결정은 나지 않았지만, 이런 상황에서 서울우유를 다른 조합이나 농가와 똑같이 대하는 것은 적절치 않다고 본다”며 “앞으로 정책 지원에서 차등을 둘 수 있다고 서울우유에도 전했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