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총재는 그때마다 “전제조건이 있었다”며 “전제조건이 바뀌었기 때문”이라고 해명했다. “미국 연준(Fed)이 9월 연방공개시장위원회(FOMC)에서 자이언트스텝(0.75%포인트 금리인상)과 함께 점도표를 크게 상향조정할 것이라고는 그 누구도 예상치 못했다”고도 말했다. 점도표란 향후 금리인상 경로를 엿볼수 있는 연준의 포워드 가이던스 중 하나다. 다만, 이 같은 발언은 한 나라 중앙은행 총재로서의 무게감을 생각한다면 한 치 앞도 보지 못한 실수를 자인하는 꼴로밖에 비쳐지지 않는다.
이 같은 예는 또 있다. 지난달 21일 추경호 경제부총리 등과 함께 비상거시경제금융회의를 갖는 자리에서 채권시장 안정을 위한 국고채 단순매입이 필요하지 않느냐는 질문에 이 총재는 “원칙도 있고 현재 언급하기엔 부적절하다”고 답해 사실상 부정적 견해를 내비쳤다. 이후 불과 일주일 후인 28일 한은은 패닉에 빠진 채권시장에 대응해 3조원에 달하는 국고채 단순매입을 실시하겠다고 발표하기도 했다. 같은 날 기획재정부는 2조원 규모의 국고채 바이백(조기상환)을 발표했고, 금융당국도 증권시장안정펀드(증안펀드) 재가동을 위한 준비에 착수했다.
이후에도 이 총재의 오락가락 커뮤니케이션에 채권시장은 급등락을 반복했다. 급기야 이 총재가 등장할 때마다 그의 오럴리스크에 바싹 긴장하는 모습을 연출했다.
‘아’ 다르고 ‘어’ 다른 한국말이 어려워서일까? 아니면 한국말을 끝까지 들어야 해서일까? 유독 한은 총재들의 커뮤니케이션은 많은 비판을 받아왔다. 애매모호했던 말들로 일관했던 김중수 전 총재는 그 스스로도 “컨빈싱(convincing·설득)시키지 못할 경우 컨퓨징(confusing·혼란)시켜야 한다”고 말해 비판을 자초하기도 했었다. 많은 말들을 쏟아낸 후 “~라고 OOO가 말했다”라고 말을 맺을 때면 기자들도 뒷목을 잡기 일쑤였다.
이후 정통 한은맨이었고 통화정책 전문가로 평가받던 이주열 총재의 등장은 특히 채권시장으로부터 “‘(김)중수’가 가고 ‘상수(혹은 고수)’가 왔다”는 기대를 낳았다. 하지만, 이 같은 기대가 무너지는 데는 채 반년이 걸리지 않았다.
“향후 방향성은 인상”이라고 호기롭게 말했던 취임 초기 언급과는 달리 취임 반년 후 최경환 경제부총리의 등장과 함께 소위 빚 내 집 사라는 초이노믹스의 추진, 호주에서의 “척하면 척” 발언 등과 어울리며 기준금리 인하를 단행했기 때문이다. 이후 이주열 총재의 존재감은 채권시장으로부터 “알고보니 ‘하수’였네”라는 평가와 함께 상당 기간 잊혀졌다. 당시 한은을 거쳐 갔던 출입기자들 사이에서도 “기준금리 결정은 한은 금융통화위원회가 아닌 청와대가 하는 것”이라는 말이 회자될 정도였다.
이주열 총재의 커뮤니케이션은 연임 말기 금리인상기를 제외하면 오랜 기간 얼버무리는 것으로 일관했다. 이 같은 이주열 총재의 커뮤니케이션을 두고 2018년 말 한은 내부에서조차 “최근 주요국 중앙은행 총재들의 의사소통은 간결해지는 추세다. 반면 이(주열) 총재의 멈블링(mumbling·중얼중얼)은 의사소통을 어렵게 하고, 한은의 평판을 낮추고 있다”는 비판이 나왔다.
‘말로 하는 통화정책’은 비용을 들이지 않고도 효과를 크게 낼 수 있는 수단이다. 이미 한은도 이 같은 효과가 어떠한지를 분석해 놓은 바 있다. 2016년 5월 초 FOMC 의결문과 연준 의장 의회발언 등을 분석해 한은이 발표한 ‘제로금리 하한에서 미 연준의 커뮤니케이션 효과 분석’이란 제목의 보고서를 보면 “제로금리 하한 기간에서도 미 연준의 커뮤니케이션은 장기채권 수익률에 영향을 미쳤다”고 결론 내렸다.
불과 일주일전 단순매입에 어느 정도 긍정적 시그널만 내놨더라면 3조원의 단순매입과 2조원의 바이백 등은 치르지 않았을 비용일 수 있었다. 이창용 총재의 커뮤니케이션이 전임 김중수·이주열 총재의 전철을 밟지 않기를 기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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