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동차 등 수출 경쟁력 타격받겠으나 소재 등 수입여건 개선
달러·엔 환율이 32년만에 처음으로 장중 150엔을 돌파했다. 글로벌 긴축 기조와 달리 완화적인 통화정책을 유지하고 있는데다, 안전자산이라는 엔화에 대한 국제적 믿음이 흔들리고 있기 때문이라는 분석이다.
다만, 이런 상황이 일본 입장에서도 그리 나쁘지만은 않다는 평가다. 우리 경제 역시 수출쪽에선 가격 경합이 큰 자동차 등을 중심으로 타격을 받을 순 있겠지만, 여전히 소재 등 부품을 수입하고 있는 입장이라는 점, 원·달러 환율도 동반 상승하고 있다는 점 등에 비춰 당장 피해가 있지는 않을 것으로 봤다.
20일 국제금융시장에서 달러·엔 환율은 장중 150.05엔까지 치솟았다(엔화 약세). 이는 1990년 8월14일 장중 150.4엔을 기록한 이래 처음이다. 그렇잖아도 엔화 약세는 최근 들어 속도를 내는 모습이다. 실제, 8월말(139.0엔) 대비 9월말(144.9엔) 달러·엔 환율은 4.17%나 올라 주요국 가운데에서도 약세폭이 컸다.
전문가들은 이같은 엔화 약세 요인으로 우선 글로벌 통화정책과 역행하는 일본중앙은행(BOJ) 행보를 꼽는다. 실제, 미국 연준(Fed)이 사실상 제로금리에서 3.00~3.25%까지 기준금리를 인상하기 시작한 2022년 3월부터 현재까지 BOJ는 제로금리(0.0%)를 유지하고 있다.
이는 여타국과 달리 일본 물가가 3%대로 안정적인 흐름을 보이고 있는데다, 디플레이션을 우려해 현재까지도 아베노믹스 정책을 펴오고 있기 때문이다.
민경원 우리은행 연구원은 “BOJ는 인플레 대응보다는 경기부양에 포커스를 두고 있다. 또, 미국과 일본간 금리격차 확대가 최근 엔화 약세에 드라이브를 건 것으로 보인다”고 설명했다. 이어 “150엔 부근에서 구두개입이 있었다. 실개입이 어느 정도로 이어질지가 관건”이라고 덧붙였다.
안전자산에 대한 인식이 흔들리고 있는 점도 꼽았다. 조경엽 한국경제연구원 경제연구실장은 “과거와 달리 엔화 자체에 대한 안전자산 인식이 바뀐 것 같다. 대외신뢰 하락에 엔화에 대한 불신이 영향을 미치고 있다”고 봤다.
완화적인 통화정책 기조에 변화가 있을 것이라는 시장기대가 어긋난 것도 영향을 미쳤다고 봤다. 일본 국채금리가 상승하면서 BOJ가 국채매입에 나서는 가운데, 이날도 10년~20년물 국채 1000억엔(약 9500억원), 5년~10년물 국채 1000억엔 규모의 긴급 국채매입에 나서기로 했다.
하건영 신한투자증권 연구원은 “엔화가치가 하락하면서 물가급등, 투자자금 이탈 등으로 BOJ가 통화정책을 바꾸지 않겠느냐는 시장기대가 있었다. 다만, BOJ가 국채매입에 나서면서 완화적 통화정책 기조가 확대되는 것으로 인식됐다”고 전했다.
엔화 약세 추세는 당분간 더 이어질 것이라는 관측이다. 엔화가 여전히 글로벌 기축통화 중 하나라는 점에서 실제 자금이탈 현상이 벌어지지 않고 있는데다, 일본 입장에서도 수출경쟁력을 위해 나쁘지 않다는 인식도 작용하고 있기 때문이다. 기술적으로도 마땅한 저항선이 없다.
하건영 연구원은 “일본은 순대외채권국 1위 국가다. 엔화약세 속에서도 되레 대외자금이 일본으로 들어오는 현상도 벌어지고 있다”며 “글로벌 강달러 분위기가 계속되고 있어 160엔 내지 165엔까지는 오를 수 있을 것”이라고 전망했다. 허찬국 전 충남대 교수도 “일본 입장에서는 디플레를 탈피하는 게 목적일 수 있다. 또 수출경쟁력 측면에서도 이익”이라고 말했다.
엔화 약세가 우리경제도 부정적 영향으로 다가올 가능성도 있다. 다만, 과거와 달리 그 영향력은 크지 않을 것이라는 평가다. 조경엽 실장은 “엔화 약세폭이 원화보다 클 경우 우리 수출기업들의 경쟁력에 어려움을 줄 것”이라고 우려했다.
반면, 하건영 연구원은 “수출경합도가 높은 자동차와 화학, 철강에서는 경쟁력 측면에서 열위에 놓일 수 있으나, 여전히 부품 등 소재 관련 수입이 많다. 한국 입장에서도 나쁘지 않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