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학 놀이터] 안다는 것과 가르친다는 것

입력 2022-12-16 05: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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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난영 과학칼럼니스트

올해가 며칠 안 남았다. ‘한 해를 돌아본다’라는 말이 딱 어울리는 시기다. 원래 목표, 다짐, 계획 이런 것들과 거리가 있는 타입인지라 올해 무엇을 이루고, 어떤 걸 더 잘 했어야 하는지에 대한 대차대조표를 쓰기 어렵다. 그래도 굳이 제일 마음에 들지 않았던 거 하나를 꼽는다면 ‘내 강의’다.

대학에서 강의한 지 꽤 됐지만 ‘만만치 않다’는 느낌이 좀체 가시지 않는다. 올해는 유난히 더 힘들었다. 내 이야기가 학생들에게 전혀 도달하지 않는 게 눈에 보였다. 수식 한 줄 한 줄과 학생들 사이에 정체를 알 수 없는 척력이 작용해 서로를 세상 끝까지 밀어내고 있다는 느낌이었다. 처음 드는 생각은 아니지만, 올해 더 자주 이런 기분이 들었다.

솔직히 자연과학이 미친 듯이 재미있지는 않다. 특히 내가 전공한 물리학처럼 수식의 향연으로 가득 찬 분야는 더 말할 필요도 없다. 책을 펴는 순간 흥미가 순식간에 영으로 수렴된다. 모두가 이해하는 더하기 빼기만을 쓴다고 문제가 해결되는 것도 아니다. 수식이 전혀 들어 있지 않고 말과 그림으로만 된 교재를 갖고 있는데, 가르치는 이가 여간한 내공을 갖고 있지 않는 한 정확한 내용 전달이 어렵겠다는 인상을 준다.

이 때문인지 두 시간 남짓한 시간 동안 한 장(章)을 무리 없이(?) 그리고 재밌게 잘 소화하려면 교수법에 대한 지식이 좀 필요하단 생각을 했다. 초중고등학교와는 달리 대학 강의는 담당 과목을 맡은 이들이 자기 방식대로 진행하면 된다. 이게 잘못된 건 아니다.

하지만 경험해 보니 내가 아는 것과 그걸 전달하는 건 서로 다른 두 짝의 양말과 같다. 적어도 내게는 그렇다. 학생으로 돌아가 내 강의를 듣는다면 어떤 평가를 내릴지 궁금하다. 내 생각처럼 교수법에 대한 고민이 이 질문에 대한 답을 내는 데 도움이 됐으면 좋겠다.

대학들도 이런 문제에 관심을 기울이고, 강의하는 개개인의 역량 문제로만 치부해 버리기보단 체계적인 도움을 제공해야 하지 않을까 싶다. 이런 고민을 하는 이가 나 하나만은 아니다.

대학에 오기 전 물리와 놀 기회를 많이 가진 학생들과 만날 수 있으면 좋겠다. 한 소셜네트워크에서 ‘물리학’이란 그룹에 참여하고 있는데 가끔 이런 질문이 올라온다. “중학생인데 대학에서 물리학을 공부하고 싶습니다. 어떤 양자역학 책을 공부하면 좋을까요?” 해주고 싶은 말이 있었는데 한참 고민하다 댓글 달기를 포기했다. 이유는 지나치게 길고 ‘꼰대스런’ 말로 받아들여질 거 같아서였다.

내가 댓글로 달아주려던 건 ‘불확정성의 원리’로 유명한 베르너 하이젠베르그의 ‘부분과 전체’라는 책에서 본 재밌는 일화였다. 사실 너무 오래전에 읽은 책이라 세부 내용까지는 잘 생각나지 않는다. 다만 들으면 다 아는 물리학의 대가 중 대가들-지금 기억으로는 현대 물리학의 아버지라 불리는 덴마크 물리학자 닐스 보어(Niels Henrik David Bohr)와 설명이 필요 없는 알베르트 아인슈타인(Albert Einstein), 그리고 또 한 명의 물리학자 세 명의 이야기다-이 길고 긴 논쟁을 벌이다 휴식 겸 산책을 할 때였다.

마침 작은 개울을 지나던 세 사람은 모두 작은 물레방아를 만들어 누구 것이 제일 잘 돌아가는가 하는 시합을 벌였다. 보어가 내기에서 이겼던 걸로 기억하는데, 사실 정확히 누구였는지는 그다지 중요하지 않다. 세 사람 중 둘은 고등수학까지 동원해가며 매우 정교하게 물레방아를 제작했고, 다른 한 명은 주변 나뭇가지를 이용해 아주 단순한 모양의 물레방아를 만들었다. 그리고 후자가 승리를 거뒀다. 자연법칙을 기술하기 위해서는 대단히 정교한 수학이 필요하지만, 수학과 물리학이 노는 세계는 같지 않다. 대단히 복잡한 외형을 하고 있지만, 그 안에 들어 있는 자연의 본모습은 의외로 단순하고 소박한 걸 수 있단 의미일 거다.

머리가 아닌 손으로 자연을 재구성해 보는 놀이는 꽤 재미있을 거란 생각도 했었다. 세 대가가 물레방아를 만들며 어린아이처럼 즐거워했다는 부분만 봐도 그렇다. 새해엔 나와 내 학생들 모두가 신나는 강의 시간이 되기를 소망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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