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별일 없이 살아.” 대답해본다. 2 대 1의 경쟁을 뚫고 들어가 꽉꽉 채운 정원으로 일을 했어도 힘들었던 대학병원 전공의 시절을 떠올리면 병원은 어떻게 돌아가고 있는지 의문일 따름이지만 사실 나의 일상은 크게 변함이 없다.
출근해서 냉기가 가득한 진료실 의자에 앉아 히터를 틀고 컴퓨터를 켠 후 진료를 본다. 소아청소년과 의사가 되어야겠다고 생각한 것은 학생 때 실습을 돌던 중이었다. 아이들이 좋았고 소아는 아프더라도 쉽게 회복하고 다시 생기가 넘쳐 흘렀다. 그 생명력이 좋았다. 소아청소년과에 가겠다고 했을 때 부모님은 지금 출산율이 얼마나 바닥인지, 또 얼마 낳지 않아 부모들이 얼마나 극성인지를 구구절절 늘어놓으며 나를 만류했지만 그때의 나는 듣지 않았다.
쉽게 나아 돌아가던 아이들은 극히 소수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정들었던 첫 환자의 심폐소생술을 마무리하고 화장실에서 엉엉 울었다. 혈액검사를 수차례나 실패해서 화가 난 아빠에게 수액걸이대로 맞을 뻔하던 때도 있었다. 그래도 내가 선택한 길이니 후회한다고 말하지는 못했다. 옆 병원 신생아 중환자실 진료를 보던 교수님과 전공의의 구속 소식을 들었다. 불안한 마음을 숨기기 어려웠다. 하지만 여전히 다른 이들의 안부를 묻는 인사에 ‘별일 없이 살아’라고 대답한다.
동고동락하던 동기들은 대학병원에서 보내던 전공의 생활을 마치고 이제는 다들 여기저기 흩어져서 각자의 삶을 살고 있다. 코로나로 인해 환자가 뚝 끊기던 때는 일자리가 위태로워 걱정, 임신한 몸으로 오늘도 150명을 진료 본 후 쓰러지듯 잠들었다는 친구도 걱정. 다들 걱정 섞인 안부를 주고받지만 소아청소년과 의사의 삶은 아직은 별일 없다. 오히려 내가 묻고 싶다. “아이들은 괜찮나요?”유새빛 소아청소년과 전문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