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기차 생산라인 전환 IRA 대응
포드 협업 2025년부터 셀 양산
삼성ㆍSK하이닉스, 칩스법 돌파
글로벌 경제 구조가 다극 체제로 개편되며 기업들은 가장 확실한 대응책으로 해외 생산기지 구축 등 현지화에 나서고 있다.
경제 패권을 두고 자국 공급망 강화에 나서는 각 국가(혹은 지역)의 요구사항을 충족하기 위해서 해외 생산기지 구축은 필수적이다. 이미 많은 기업이 해외 생산기지를 구축했으나 그 목적은 비용 절감, 현지 경쟁력 강화 등에서 ‘다극 체제 대응’까지 더해졌다.
가장 적극적으로 해외 생산기지 구축에 나서는 산업군은 자동차·배터리·반도체 업계다. 지난해 미국이 인플레이션감축법(IRA), 반도체과학법 등을 제정하며 공격적으로 자국 공급망 구축에 나서고 있기 때문이다.
현대자동차그룹은 지난해 10월 미국 조지아주에 전기차 전용 신공장 ‘현대자동차그룹 메타플랜트 아메리카(HMGMA)’를 짓기 시작했다. 애초 현대차그룹은 올해 본격적인 공장 건설에 착수해 2025년 상반기부터 양산 체제를 갖추려 했으나 IRA에 대응하기 위해 조기 착공을 결정했다. 생산 시기 역시 앞당겨지며 이르면 2024년 3분기부터 조기 생산에 돌입할 계획이다. 연간 생산 대수는 약 30만 대다.
현대차그룹이 HMGMA 설립 계획을 서두르는 것은 IRA가 북미에서 제조된 전기차에만 보조금을 지급하도록 요구하기 때문이다. IRA는 북미 지역에서 최종 조립된 전기차에만 최대 7500달러의 세액공제 혜택을 제공한다. 이에 따라 현재 거의 모든 전기차를 국내에서 생산하는 현대차그룹은 미국 현지에 전기차 공장을 새로 짓거나, 기아 조지아 공장의 기존 시설을 전기차 생산라인으로 전환하는 등 IRA에 대응하고 있다.
IRA가 전기차 배터리에 대해서 ‘북미에서 제조된 배터리 소재가 일정 비율 이상이어야’ 전기차 세액공제 혜택을 주는 만큼 배터리 업계도 미국 시장 진출에 적극적으로 나서고 있다.
SK온은 현대차그룹과 ‘북미 전기차 배터리 공급 협력을 위한 업무협약(MOU)’을 맺고 2025년부터 북미 지역에서 현대차그룹에 배터리를 공급한다. 공급 물량 등 구체적 사안은 추후 논의한다.
양사는 이를 위해 미국 조지아주에 배터리 합작 공장을 세운다. 조지아주는 HMGMA 등 현대차그룹의 생산기지와 가까운 곳으로, 현대차그룹은 이곳을 통해 안정적인 배터리 공급망을 확보할 것으로 기대된다. 현대차그룹은 LG에너지솔루션과도 비슷한 합작법인을 설립할 계획으로 알려졌다.
국내 기업과 현지 진출 외에도 아예 해당 지역 기업과 손을 잡는 예도 있다.
SK온이 미국의 자동차 기업 포드와 함께 만든 배터리 생산 합작법인 ‘블루오벌SK’는 지난달 미국 켄터키주에서 블루오벌SK 공장 기공식을 진행했다. 포드 역시 IRA가 요구하는 조건을 충족하기 위해 북미산 배터리가 필요한 만큼 SK온과 안정적인 배터리 공급망을 구축하겠다는 계획이다. 켄터키에는 각각 43GWh 규모의 배터리 공장 2곳이 설립될 예정이며, 2025년 1월부터 배터리 셀 양산을 시작한다.
미국의 ‘반도체과학법’ 영향을 받는 반도체 기업 역시 현지에 새로운 생산 기지를 구축하고 있다.
반도체과학법은 미국 내에서 반도체 설비 투자를 하면 25% 세액공제 혜택을 제공한다. 미국이 이 법안을 지원하기 위한 투자액만 2800억 달러(약 365조 원)에 달한다.
이에 따라 현지에 생산 시설을 짓는 삼성전자, SK하이닉스는 혜택을 받았다. 삼성전자는 170억 달러 규모의 파운드리 공장을 미국 텍사스 테일러시에 건설하는 등 향후 20년간 미국에 반도체 공장 11곳을 신설한다.
SK하이닉스는 반도체 연구개발(R&D) 협력과 첨단 패키징 제조시설 투자 등에 150억 달러를 투자한다. 올해 상반기 중에 미국 내 패키징 제조시설 부지를 선정할 것으로 알려졌다.
홍지상 한국무역협회 국제무역통상연구원 연구위원은 “미국이 자국 중심적 산업 정책을 노골적으로 펼치는 것 자체가 많은 변화를 의미한다”며 “기업들이 해외 시장 확보를 위해 현지 투자, 진출하는 기조가 상당 기간 이어질 것”이라고 분석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