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 나이 67세. 본래대로라면 퇴직하고도 남을 나이에도 황주호 한국수력원자력 사장은 현장에서 뛰고 있다.
신규 원전 건설, 원전 10기 수출, 노후 원전의 계속운전 허가. 원전이 뜨거운 감자가 된 상황에서 이를 총괄하는 한수원은 핵심 공공기관으로 떠올랐다. 황 사장은 윤석열 정부의 첫 한수원 사장이다. 보통 산업통상자원부나 한수원 출신 등을 사장으로 선임하던 것과 달리 교수 출신임에도 황 사장은 한수원 사장이 됐다.
황 사장이 한수원 사장이 된 가장 큰 이유는 전문성이다. 황 사장은 국내에서 제일 가는 원자력 전문가로 불린다. 황 사장은 1982년 서울대 원자핵공학과를 졸업한 후 미국 조지아공대에서 원자핵공학 박사학위를 취득했다.
이후 2006년 국가에너지위원을 시작으로 2010년 한국에너지기술연구원장, 2014년 한국원자력학회 부회장, 2015년 한국원자력학회 수석부회장을 거쳐 2016년엔 회장으로 당선됐다. 2021년엔 한수원 원전안전자문위원장을 지내면서 원자력 분야에선 자타공인 최고의 전문가로 꼽혔다. 이를 눈여겨본 윤 대통령은 '원전 10기 수출, 원전 생태계 복원'이라는 새 정부의 목표와 함께 황 사장을 임명했다.
29일 서울 중구 한수원 방사성보건원에서 만난 황 사장은 윤 대통령이 눈여겨본 '원전 전문가'인만큼 원전에 대한 애정이 남달랐다. 황 사장은 특히 민생 현안으로 떠오른 '전기료 폭탄'의 해결사로 나설 것임을 자처했다.
최근 몇 년간 원자력 발전소는 에너지 정책의 화두가 됐다. 지난 정부에선 '탈원전 정책'을 펼치면서 원전 가동을 멈추기 시작했고, 이번 정부에선 원전 재가동은 물론 새로운 원전 건설까지 약속했다.
황 사장은 지난해 신한울 1호기를 시작으로 2025년 새울 4호기까지 매년 1기씩 원전을 준공한다는 계획을 갖고 있다. 원전 가동이 본궤도에 오르면 전기요금 부담을 크게 줄일 수 있다는 게 그의 생각이다.
그는 "(원전으로) 안정적 전력수급에 도움을 주고자 최선을 다하고 있다"며 "전기요금을 꽤 방어하는 게 원자력"이라고 강조했다. 한수원에 따르면 원자력은 다른 발전원보다 정산단가가 저렴하다. 석탄의 34%, LNG의 23%, 풍력과 태양광의 28% 수준이다.
황 사장은 원전이 다른 발전원보다 뛰어난 경제성을 가졌다고 주장했다. 그는 "발전용량이 680MW(메가와트)인 고리 2호기의 지난 10년간 전력판매량을 동일용량의 LNG 발전으로 대체하면 3조2000억 원가량 추가 비용이 발생한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탄소중립을 위해서라도 원전이 꼭 필요하다"고 부연했다.
그는 원전을 '친환경 에너지'로 볼 수 있는지에 관해서도 확신에 차 있었다. 특히 원전 가동으로 얻어지는 보이지 않는 효과를 강조했다. 황 사장은 "한수원이 이산화탄소 감축에 엄청나게 기여한다. 원전 1기가 1년에 석탄 발전보다 900만 톤 정도 이산화탄소 감축이 가능하다."고 했다. 철강을 많이 생산하는 포스코를 예로 들면 43일 정도 이산화탄소를 줄일 수 있는 양이다.
황 사장은 지난해 취임 직후 이집트 엘다바 원전 프로젝트 수주와 폴란드 민간 발전사 제팍(ZE PAK)이 주도하는 원전 사업의 협력의향서(LOI)를 체결했다. 원전 10기 수출의 신호탄을 쏜 것이다.
거대한 자금력과 정부 지원을 받아 폴란드 수주전에 뛰어들었던 웨스팅하우스. 한수원의 가장 큰 경쟁자다. 황 사장은 웨스팅하우스와 경쟁에서 한국 원전의 우수성을 알리기 위해 사방으로 뛰었다. ZE PAK 주도의 원전 사업도 그렇게 따낸 것이다.
황 사장은 "폴란드 정부 관계자, 산업계와 언론 등에 지속해서 한국 원전의 우수성을 홍보했다. 또 폴란드 기업과 MOU 체결을 통해 공급망 구축에도 노력했다"며 "정부와 한수원의 활동으로 폴란드 정부와 산업계에 신뢰를 준 것"이라고 설명했다.
황 사장은 앞으로도 체코, 네덜란드, 필리핀, 카자흐스탄, 루마니아, 슬로베니아 등과 원전 관련 사업 협력을 통해 원전 수출 활성화를 이끌겠다고 다짐했다.
그는 "세계 시장에 나가서 딱 정해진 기간에 정해진 예산으로 (원전 건설을) 할 수 있는 나라는 우리나라밖에 없다. 설계, 건설, 운영 최적화가 어느 정도 잡힌 회사는 어느 곳에도 없다"고 목소리 높였다.
취임 전까지 사용후핵연료와 관련해 국내에서 전문가로 손꼽히던 황 사장은 취임 후에도 꾸준한 관심을 이어가는 중이다. 황 사장은 국내 최초로 방사선 및 방폐물 분야에서 해외 박사학위를 취득한 전문가다. 한수원 원전안전자문위원회 이사장을 맡았고, 오래전부터 사용후핵연료 처리에 대해 국내에서 목소리를 높였다. 2005년엔 방폐장 부지 확보 공로로 대통령 표창을 받았다.
황 사장은 "충분히 인내심이 필요하다. 국민의 수용성을 충분히 높일 수 있도록 홍보할 생각"이라고 밝혔다. 그러면서 "고리본부를 시작으로 원전부지 내에 건식저장시설을 지어 저장용량을 추가로 확보할 계획"이라고 덧붙였다.
황 사장의 노력 덕일까. 26일 국회 산업통상자원중소벤처기업위원회는 전체회의를 열고 사용후핵연료 관련 법안에 대한 공청회를 진행했다. 여야는 법안 통과에는 어느 정도 뜻을 모았고, 2월 중엔 법안 소위를 열 가능성이 크다.
황 사장은 비방사성 지하연구시설이 국민 수용성 확보를 위한 하나의 방법이 될 수 있다고 주장했다. 황 사장은 "연구시설을 통해 많은 나라가 국민 수용성을 확보했다"며 "우리나라도 이 시설을 빠른 시일 내에 갖춰서 잘 진행한다면 충분히 (처분장 건설까지) 가능하다고 본다"고 했다.
법안의 핵심 쟁점 중 하나인 '재처리 기술'과 관련해서 "사용후핵연료의 부피를 줄이는 기술을 개발하는 방법을 대안으로 볼 수 있다"고 제안했다. "재처리 기술은 현실적인 어려움이 있다. 재처리 대신 부피 저감 기술 방법이 합리적인지 사전 검토가 돼야 할 것으로 보인다."
원전을 통한 에너지 생산과 원전 수출, 원전 안전까지. 원전에 대한 황 사장의 열정은 남달랐다. 황 사장은 지속 가능한 원전 사용을 위한 방안도 계획 중이다. 특히 원전을 통해 수소를 생산하는 프로젝트는 올해부터 진행한다.
황 사장은 "미국은 이미 2019년부터 네 군데에서 하고 있고, 영국과 프랑스도 하고 있다. 한국도 곧 한다”며 "탄소중립을 하려면 화석연료를 안 써야 한다. 화석연료를 쓰는 가장 큰 부분이 발전, 화학, 제철인데 수소로 대체하는 방법이 있다"고 설명했다.
이어 "수소 경제로 간다고 했을 때 대규모로 생산할 수 있는 수단이 원자력"이라며 "원자력 발전소에서 생산한 전기를 사용해 전기 분해를 하면 이산화탄소 발생 없는 수소를 대량으로 만들 수 있다"고 힘줘 말했다
부임 직후부터 안전을 강조해온 황 사장에게 ‘원전 안전’은 가장 중요한 가치다. 황 사장은 "앞으로도 안전하게 원전을 운영해 안정적으로 전력을 공급함으로써 국민 신뢰에 부응하는 국제 최고 수준의 원전 경쟁력 확보를 위해 노력하겠다"고 약속했다.
이제 막 임기 초반을 넘기는 황 사장에게 남은 목표는 무엇일까. 한 시간 동안 이어진 인터뷰 내내 원전에 대한 열의를 드러냈던 황 사장의 뒤로는 고(故) 김정기 일러스트레이터의 유작인 한국형 원전 APR1400 그림이 눈에 들어왔다.
"한수원이 갖춰야 할 기초를 어떻게 갖출지 거기에 대한 틀을 잘 만들어놓고 나가겠다. 원전 수출에 대해서도 기초를 다지겠다. 급하게 먹으면 다 체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