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게임이론으로 세상 읽기] 지극히 비시장적인 보건의료인들의 노동시장

입력 2023-03-02 05: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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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대영 한양대학교 경제금융대학 교수

최근 삼성서울병원의 ‘PA 간호사’ 채용공고가 문제를 일으켰다. PA는 Physician Assistant의 줄임말로 진료보조간호사 또는 전담간호사 등으로 불리며 수술 처치 처방 등 의사 업무 일부를 대신하는 인력이다. 미국 영국 등과 달리 관련법이 제정되어 있지 않은 한국에서는 PA 간호사의 의료행위에 불법성 여지가 있지만, 이미 상당기간 다수의 대형병원에서는 해당 인력을 선발하여 관련 업무를 수행하게 하고 있었다. 대형병원 의사 간호사 등 관련 주체 모두가 알고 있었던 이 공공연한 비밀이 한 병원의 채용공고를 불씨로 의료법 위반 고발로까지 이어지게 된 것이다.

‘PA 간호사’ 논란, 직역간 대립 연관

겉만 보면 한 병원과 특정 의사협회 간의 분쟁으로 보이는 이 문제 속에는 사실 상당히 복잡한 보건의료 직역 간의 긴장관계가 숨어 있다. 2월 9일 간호법 제정안이 국회 본회의에 직회부되었다. 이에 해당 법 제정에 반대하는 대한의사협회(의협)는 크게 반발하며 규탄시위를 벌이고 있다. 반면 대한간호협회는 간호법이 간호사만을 위한 법이 아닌, 전문간호사 간호사 간호조무사 등 간호인력 전체의 업무범위를 명확히 하고, 변화된 의료환경에 대처하기 위하여 필수적이라며 시급한 법 제정을 요구하고 있다. PA 간호사 관련 분쟁도 이러한 직역 간의 대립과 연관이 없지 않다.

의협은 대형병원의 PA 간호사 고용은 인건비를 줄이기 위한 위법행위라고 주장한다. 간호사가 의사의 업무범위를 침해하여 보건의료 체계에 악영향을 미칠 것이라는 의협의 주장은, 간호법 제정과 PA 간호사 채용에 반대하는 공통논리이다. 이에 반해 대형병원은 부족한 전공의를 대체하기 위한 PA 간호사 고용은 필수적이라 이야기한다. 대학병원조차 특정 전공에 대한 전공의 지원자가 부족하여 애를 먹는 상황 속에서, 기타 대형병원이 전공의를 확보하는 것은 현실적으로 불가능하다는 것이다. 수많은 대학입시생들이 그 어떤 학과보다도 의대를 선호하고 있는 상황임에도 오랜 기간 의사 부족 현상이 지속되고 있는 이유는 무엇일까?

의사 시장은 자유경쟁시장의 수요공급 법칙이 정상적으로 작동하지 않는 대표적 시장이다. 그러한 면에서 그 어느 시장보다 비시장적이라 할 수 있다. 의사가 되기 위해서는 면허가 필요하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공급에 구조적인 제한이 있다는 점에서 더 그렇다. 현재 정부는 의협의 반대로 의과대학 정원을 늘리지 못하고 있다. 고령화와 만성질환 증가, 그리고 전공의 부족 상황 속에서 의사에 대한 초과수요가 지속적으로 발생하고 있지만, 그에 대응하여 정원을 늘리지는 못하고 있는 상황인 것이다.

의사 초과수요, 인력간 도미노 현상으로

의사에 대한 초과수요는 결국 보건의료 인력 간 수요의 도미노 현상으로 이어졌다. 전공의 부족현상으로 간호사가 PA 간호사의 형태로 의사 직무까지 대체하는 상황이 발생하였고, 이는 간호사 인력의 손실로 이어져 간호조무사가 그 부족분을 대체하는 상황이 발생한 것이다. 이러한 도미노와 같은 상황에서 PA 간호사는 ‘가짜 의사’ 취급을 받고 간호조무사는 ‘가짜 간호사’ 취급을 받고 있으며, 그 영향으로 대중은 보건의료 인력 전반에 대한 신뢰를 잃어버리고 있다.

대중에게 간호법이라는 법안명이나 PA 간호사라는직무명은그렇게 중요하지 않다. 자신의 건강을 믿고 맡길 수 있는 믿을 만한 보건의료 인력이 옆에 있어주기를 바랄 뿐이다. 전문성이 핵심인 대형병원에는 전공의가 없고, 비상주 의사를 위촉하여 운영하는 지방 요양병원에는 간호조무사들만 있는 상황 속에서, 대중이 믿음을 가지고 의지할 수 있는 곳은 그리 많지 않아 보인다. 의사협회와 간호협회, 그리고 간호조무사협회 등 기타 보건의료 인력협회들의 이해관계가 복잡하게 얽혀 있는 상황 속에서 공공의 이익을 대변할 정부와 국회의 역할이 상당히 중요한 상황이지만, 특정단체만을 대변하는 듯한 정치인들의 모습은 실망스럽기까지 하다.

고등학생은 적성과 관계없이 기를 쓰고 의대를 가야 하고, 대형병원은 전공의를 뽑고 싶어도 PA 간호사를 뽑아야 하고, 각 의료직역협회는 간호법 제정에 목숨을 걸거나 결사반대를 해야 하는 이 상황이 계속된다면, 의사의 진단을 받고자 하는 많은 이들이 병원을 찾는 대신 챗GPT 검색을 하게 될지도 모를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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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오로라2
    언론이 지금의 현상에 대해서 모두 똑같이 1차원적인 보도만 하고, 여론을 모두 한 방향으로만 몰아가는 것 같습니다. 조금만 알아보면 생각과 전혀 다르다는 것을 알 수 있지만 그렇게 하지 않는 것 같아서 아쉽습니다. 왜 민간병원이 아닌 지방의료원, 보건소에만 의사가 없고, 왜 동네 소아과 전문의는 남아돌고 대학병원 전공의는 부족한지에 대해서도 알아본다면 지금 나타나는 현상에 대해서 제대로된 설명이 가능할 것입니다. 그렇지 않다면 그냥 의사 부족하다고 우겨서, 세금으로 의대만들라는 식의 주장에 불과할 것입니다.
    2023-03-04 01:59
  • 오로라2
    밑에 말씀드렸듯이 한 나라의 의료는 모든 OECD 의료지표를 종합적으로 평가해야 합니다. 최상위 의료지표를 빼고 의사수만 거론하는 것은 의료에 대한 왜곡된 평가입니다. 유독 지방의료원, 보건소에만 생기는 문제들은 의전원 부작용입니다. 자연히 해결됩니다. 대학병원 필수의료과 전공의 문제는 전문의는 남아돌고 저임금 전공의는 모자라는 것이지 의사수 부족의 문제와는 다릅니다. 이 3가지를 근거로 지방국립대 의대신설을 거액의 세금을 투입하는 것은 지방국립대 생존을 위한 효과외에는 없습니다.
    2023-03-04 01:48
  • 오로라2
    한 나라의 의료수준을 의사수로만 평가하는 것은 단순한 발상입니다. 그 논리면 일본 의사수는 2.5명으로 한국과 별차이가 없습니다. 그러면 일본은 의료후진국인지요? 일본은 평균수명 세계 1위, 한국은 세계 2위입니다. OECD통계상 한국 의료접근성 압도적 1위, 치료가능사망률 세계 최상위권입니다. 반면 진료비는 세계 최저수준입니다. 왜 OECD통계에서 의사수만 거론하며 한국의 자랑스런 의료지표는 공개하지 않는지 모르겠습니다. 이스라엘 군이 아랍군을 이기는데, 단순히 군인 수가 더 적다고 반도체 인재를 군인으로 만들겠다는 논리입니다.
    2023-03-04 01:37
  • 오로라2
    나로호 박사급 연구원 연봉이 자동차 공장 근로자 월급과 비슷하거나 적습니다. 나로호 개발을 외국보다 수십배 적은 비용으로 했습니다. 결국 이공계에 대한 대우가 너무 낮기 때문에 생기 때문에 의대가 탈출구가 되는 것입니다. 그렇다고 한국의사의 대우가 외국보다 좋아서 생기는 현상이 아닙니다. 한국 내시경 4만원, 인도16만원, 미국 350만원입니다. 의대 증원으로 의대쏠림을 막을 수가 없고, 이공계를 제대로 대우해 주는 것이 맞는 정책입니다. 수재들 출구를 모두 막고 저임금으로 부리겠다는 것은 반시장적 발상입니다.
    2023-03-04 01:30
  • 오로라2
    의사수를 2배로 늘려도 의사 수입이 절반이 되지 않습니다. 전문직은 수요를 창출하려는 경향이 있어서 새로운 치료법을 개발하기 때문입니다. 결국 국가 총 의료비는 당연히 상승합니다. 예를 들면 산부인과 자궁근종을 수술하는 대신 새로운 방식인 하이푸 시술을 해서 저가의 수술료를 고가로 바꾸는 식이 됩니다. 그 결과 의사수를 늘려도 의사 수입은 유지가 되므로, 의대 쏠림을 완화시키기는 커녕 서울 공대갈 인재만 더 빼앗는 결과입니다.
    2023-03-04 01: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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