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감 후] 정책 따라가다 손해 보는 나라

입력 2023-11-20 05:00 수정 2023-11-20 08: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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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책 따라가다 손해 보는 나라.”

일회용품 사용 금지 계도기간 종료를 불과 보름 앞두고 정부가 관련 정책을 백지화하자 소상공인들은 반발했다. 자영업자들이 의견과 정보를 공유하는 온라인 카페에는 정부를 비난하는 거친 언어와 ‘무정부’ 같은 불신의 키워드들이 오갔다.

정부는 일회용품 사용으로 인한 환경 피해를 줄이기 위해 지난해 11월부터 음식점·커피전문점 등 매장 내 종이컵과 플라스틱 빨대 사용을 금지했다. 비닐봉지도 사용할 수 없게 했다. 오는 23일에는 계도기간을 종료하고, 본격적인 단속과 과태료 부과에 나설 예정이었다. 환경부는 지난 7일 이를 뒤집었다. 식당, 카페 내 일회용 종이컵 사용 금지를 철회했고, 일회용 플라스틱 빨대와 젓는 막대 사용을 금지했던 방안은 계도기간을 두지 않으면서 사실상 무기한 연장했다. 편의점과 제과점 등에서 비닐봉지도 사용할 수 있다.

환경부는 “고물가, 고금리 등 어려운 경제 상황에 고통을 겪는 소상공인과 자영업자에게 규제로 또 하나 짐을 지우는 건 정부의 도리가 아니다”라고 부연했다. 특히 이번 정책과 관련해 “일방적으로 강제하는 규제와 처벌의 방식으로는 원하는 결과를 얻는 데 한계가 있는 게 사실”이라고 했지만 소상공인들의 반응을 보면 이번 발표 역시 일방적이긴 마찬가지로 보인다.

정부의 환경 정책은 일부 소상공인들에겐 규제이자 압박이었다. 종이컵을 사용할 수 없어 설거지할 인력이 필요했고, 친환경 제품에 대한 원가도 늘려야 했다. 정부는 이런 현장의 고충을 반영했다며, 이번 정책을 두고 ‘규제 합리화’라고 표현했다. 하지만 종이 빨대를 비롯해 다회용 컵, 종이 포장지 등을 구비하며 정부의 정책에 보조를 맞춰온 소상공인도 적지 않다. 고물가, 소비 부진 상황에서도 친환경 제품을 들이기 위해 손ㆍ발품을 팔았고, 원가를 더 들여 구매했다. 일회용품을 달라고 우기는 소비자들과의 실랑이도 견뎌냈다.

‘계도기간에 규제를 이행하기 어렵다는 점을 확인했다’는 애매한 설명과 함께 부침개 뒤집듯 제도를 뒤집으면서 소상공인들은 그간의 노력이 물거품이 된 데 화가 난 듯했다. 제도 시행에 맞추려 좁은 영업 공간에 친환경 용기를 구매해 쌓아놨던 소상공인은 이를 반품하지 못하고 있다. 소비자들이 종이 빨대를 선호하지 않으니 쓰레기가 될 것 같다는 하소연도 나왔다. 친환경 빨대 등을 제조해 납품하던 기업들도 판로 상실이라는 날벼락에 도산 가능성이 제기되고 있다.

온라인에는 제도 환영과 체념, 답답함, 비난이 마구 뒤섞였다. 한 소상공인은 “지킨 사람만 바보가 됐다”고 볼멘소리를 냈다. 이번 백지화는 일회용품 사용을 줄이려는 사회적인 움직임, 친환경에 초점을 맞추는 국제적 흐름에도 역행한다.

소상공인들은 이번 사태를 단순히 정책 후퇴로 받아들이지 않는 분위기다. 정책 일관성에 대한 믿음의 고리가 끊어진 셈이다. 이들 사이에선 “총선이 끝나면 어떻게 될지 모른다”는 말이 흘러나온다. 환경부는 내년 4월 치러지는 총선 연관성에 대해 “정부가 선거를 의식해 일하진 않는다”고 잘라 말했다. 그래야 한다. 정부가 나랏일을 그렇게 단편적이고 편협하게 꾸릴 리 없다.

그런데도 최근 정부와 여당이 쏟아내는 다양한 카드를 보면 정책 순수성에 의구심이 든다. 코로나 재난지원금 환수 면제, 산업용 전기요금 인상, 주식 공매도 금지, 김포 서울 편입, 이번 환경 정책 백지화까지. 속도 조절의 실패 때문일까. 강서구청장 보궐선거 참패 후 민심 이반을 수습하려는, 총선용 포퓰리즘이라는 인상을 지우기 어렵다. 환경부가 완화로 방향을 틀면서 이를 보완할 구체적인 친환경 정책과 일회용품 사용 감축 방안에 대한 밑그림을 제시하지 못한 것 역시 의구심에 힘을 보탠다.

정책을 뒤집을 땐 그에 대한 당위성이 필요하다. 그 불가피성을 주장하기 위해선 충분한 설득과 소통, 공감이 전제돼야 한다. 이런 스텝을 거치지 않은 정책은 여론의 포화를 맞기 쉽다. 올진 정책과 일관성이 현장의 혼선을 막을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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