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플라자] ‘첩첩산중’ 베네수엘라 민주주의

입력 2023-11-28 05: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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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10월 모처럼 베네수엘라에 대한 좋은 소식이 들렸다. 집권 정부와 야권이 내년 하반기 주요국의 감독하에 자유롭고 공정한 대통령 선거를 치르기로 합의한 것이다. 현재 베네수엘라는 사실상 권위주의 체제 속에 있다고 평가받는다. 노르웨이가 중재한 이번 ‘바베이도스 합의’가 계획대로 이행된다면, 2018년 대선에서 니콜라스 마두로 현 대통령의 재집권이 확정된 지 6년 만에 ‘평평한 운동장’에서 대선이 치러지게 된다. 지난 대선은 베네수엘라 야권은 물론 미국 등 서방 자유주의 진영과 중남미 대부분 국가로부터 ‘부정 선거’로 규정됐다.

좌파정권, ‘경제’에 발목잡혀 선거 수용

이번 여야 합의는 1999년부터 지금까지 연달아 집권한 차베스 정부와 마두로 정부가 짓밟아 온 베네수엘라의 민주주의가 평화적인 방법으로 되살아날 수 있는 여지가 생겼다는 점에서 의미가 있다. 2018년 대선 이후 베네수엘라 여야 관계가 급격히 악화하자 일각에서는 국내 정치세력 간 대화를 통한 민주주의 회복은 어려워진 것 아니냐는 우려도 제기되었기 때문이다.

최근 몇 년간 베네수엘라 정국은 꼬일 대로 꼬여 있었다. 마두로 정부의 정당성을 불인정하는 야권에서는 2019년 후안 과이도 국회의장을 임시 대통령으로 추대하기에 이르렀고, 서방 자유주의 진영은 그를 지지했다. 하지만 사법부, 군부, 선거관리위원회는 물론 언론까지 장악한 마두로 정부는 과이도가 이끄는 야권과 서방의 재선거와 국가 정상화 요구에 꿈쩍도 하지 않았다. 중국과 러시아의 지원과 중남미 내 좌파 연합의 ‘눈 감기’도 정권 유지에 도움이 됐다.

국내 반대 세력을 무력화하고 국제 사회의 손가락질도 견뎌온 마두로 정부의 아킬레스건은 경제문제였다. 2018년 대선 이후 본격화된 미국의 경제제재가 특히 뼈아팠다. 미국의 전방위적 경제제재는 원유 가격 하락, 방만하고 비효율적인 재정 운영, 민주주의 후퇴 등으로 안 그래도 하강 국면에 있던 베네수엘라 경제에 큰 타격을 입혔다.

미국은 민주주의 회복을 압박하기 위해 마두로 정부의 ‘자금줄’ 역할을 하는 국영석유기업과 미국 기업 간 모든 거래를 금지하고 국영석유기업의 미국 내 자산을 동결했다. 베네수엘라 수출의 전부를 담당한다 해도 과언이 아닌 원유 수출로 얻어지는 수익을 마두로 정부가 권위주의 강화를 위한 자금으로 쓰는 것을 차단하기 위함이었다. 이뿐만 아니라 베네수엘라 내 미국 석유기업의 생산 활동도 중단할 것을 명령했다. 제재에는 주요 동맹국의 동참도 끌어냈다.

野 유력후보 부정 의혹…공정선거 갈림길에

미국의 전방위적 제재로 경제위기가 견딜 수 없는 수준으로 치닫자 마두로 정부는 2021년부터 야권과의 대화에 임했고, 이는 결국 ‘바베이도스 합의’라는 성과를 냈다. 미국은 제재의 완전한 해제를 위해서는 마두로 정부가 공정 선거를 치르고자 하는 의지를 지속해서 보여줘야 한다는 입장이다. 미국이 가장 강력히 요구하는 것은 마두로 정부가 야권 주요 인사에 내렸던 선거 출마 금지 조치를 해제하는 것이다. 해당 조치가 해제되어야 지난 10월 예비선거를 통해 당선된 야권 단일후보가 대선 레이스에 나설 수 있다. 야권 예비선거에서 92%의 득표율로 당선된 마리아 마차도 전 의원은 정부의 출마 금지 리스트에 올라 있다.

마두로 정부 입장에서는 민주적 절차에 의한 선거는 보장하되, 야권의 ‘스타’ 마차도의 대선 출마를 저지해 야권 후보가 난립하게 하는 것이 가장 좋은 시나리오다. 이 시나리오를 위해 검찰은 발 빠르게 야권 예비선거에서 불거진 부정 의혹 조사에 나섰고, 친여 성향의 대법원 역시 여당이 제기한 예비선거 결과 효력 가처분 신청을 받아들였다.

미국은 이에 제재 재개를 거론하며 강한 경고 메시지를 보내고 있다. 하지만 제재의 효과에 대한 국제 사회의 의문이 확산하는 마당에 제재 재개는 부담이다. 주요 세력의 셈법이 복잡해지는 가운데, 베네수엘라 민주주의는 또다시 갈림길에 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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